'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그때 읽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영어로 된 만화책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영어를 알지 못해서 옆에 있는 한글 해석으로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제가 너무 불쌍했고, 나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번 읽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았달까? 나에게도 뽀르뚜가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20대가 되었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내 머릿속에서 가슴 저미는 아름다운 동화로 남아 있었다. 10년 정도 지나고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제가 겪었던 유년시절을 다 겪어 뒤돌아보며 읽는 느낌이 들었고,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뽀르뚜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 책에 깊게 빠져들어 읽은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나 싶었다.

가난

  가난은 사람을 빨리 성숙하게 하는 것 같다. 제제가 빨리 철이 든 이유는 가난이 한몫을 했다. 제제의 집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난했고, 필요한 물건들은 외상으로 많이 사서 더 이상 외상이 안 될 정도였다. 아버지의 실업때문에 가족들은 일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구직하시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온종일 일을 하시고, 누나들까지도 일했다. 제제를 어머니와 같이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나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악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죽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내 속에 악마 대신 착한 예수님이 태어났으면 해."

"혹시 알아? 내년에는 그렇게 될지. 너도 나처럼 해볼래?"

"어떻게 하는데?"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래야 실망도 안 하거든. 아기 예수도 사람들이나 신부님이나 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애는 아니야." p.68

  제제의 형인 또또카와 제제의 대화이다. 이처럼 가난은 사람을 조숙하게 만든다. 어린 제제가 너무 빨리 현실적인 것을 알아버리는 것 같아서, 동심의 순수가 일찍 파괴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사랑

  이런 제제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가족들은 제제가 장난칠 때 사랑이 담긴 말 대신 매를 사용하였고, 제제의 장난을 좋아하는 모습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를 매로 바꾸려고만 했을 뿐이다. 가족 중에 제제를 특히 아끼던 글로리아 누나도 제제를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이야기 중에 제제가 정말 심하게 매를 맞는 장면이 있다. 제제는 종이풍선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필 때는 밥 시간이라 잔디라 누나는 밥을 차리고 제제를 불렀다. 하지만 제제는 풍선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잔디라 누나는 화가 나서 제제가 만들던 풍선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화가 난 제제는 뜻은 정확히 모르지만 심한 욕으로 알고 있는 '갈보'라는 말을 잔디라 누나에게 했다가 또또카 형에게까지 모진 매질을 당한다. 심하게 맞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제제는 집에서 아빠와 함께 있는다. 제제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빠 앞에서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자신이 아름다운 노래라고 생각하는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를 부른다. 제제가 놀리는 것으로 오해한 아버지는 제제를 죽기 직전까지 때린다.

"엄마,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 풍선처럼 됐어야만 했어요." p.221

  어린 제제가 이렇게 말하는데 마음이 미어졌다. 안 그래도 약했던 어린 아이의 자존감이 모두 무너지는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항상 매를 맞던 제제에게 한 줄기 빛은 뽀르뚜가였다. 뽀르뚜가는 제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다. 제제의 대담함과 명석함을 알아보았고, 이상적인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베풀었다. 그는 제제의 순수성을 지켜주는 방법을 알았고, 제제의 유일한 친구였다. 제제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제제에게는 더 필요했었던 것이다. 

  뽀르뚜가가 망가라치바에 치인 후에 제제는 패닉에 빠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제가 아픈 이유가 라임오렌지나무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밍기뉴 이야기만 한다. 제제와 뽀르뚜가의 관계는 누구에게도 비밀이었으니까. 다만 제제는 밍기뉴에게만 뽀르뚜가 이야기를 했다. 밍기뉴에 대해 이야기 할수록 뽀르뚜가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실도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뽀르뚜가만을 그리워하는 제제가 측은했다. 잊을 수 없는 뽀르뚜가를 제제는 밍기뉴의 첫 꽃과 함께 떠나보낸다.

  "한 가지 소식이 더 있다. 네 라임오렌지나무도 그렇게 빨리 잘리진 않을 거야. 그게 잘릴 때쯤에는 우리가 멀리 이사갈 테니까 넌 그게 잘렸는지도 모를거야."

  나는 흐느끼며 아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됐어요, 아빠.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리고 나를 따라 눈물을 흘리는 아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잘라 갔어요, 아빠. 벌서 일주일도 전에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잘라 갔어요." p.292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는 너무 빨리 철이 든 제제와 아버지 같은 사랑을 주는 뽀르뚜가, 그리고 제제의 친구인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가 나온다. 너무 빨리 철이 든다는 것은 아이에게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아이의 순수가 빨리 사라지는 점이 안타깝달까? 읽다 보면 가슴 저미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뽀르뚜가와 제제의 사랑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제제의 모습을 보면 또 가슴이 아프다. 뽀르뚜가와의 대화를 자꾸 상기시키는 제제가 너무 불쌍했고, 마지막에 자신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이미 잘렸다고 말하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시 읽어도 참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잠자던 감성을 깨우기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만한 소설이 있을까 싶다. 

  p.s. 제제가 참 공감간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실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었다는 것을 세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