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자인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저서 군주론을 읽었다. 동양 철학서는 많이 들어보고 몇 권 읽어봤는데, 서양 철학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후로 처음 읽는 것 같다. 그래도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 언어영역에서 지문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쉽게 잡히는 책이었다. 제목과 마찬가지로 군주로서 가져야 할 덕목들과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법들이 적혀있다.

군주론이라는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다. 앞서 읽은 책보다 훨씬 쉽게 읽혔다. 과거 군주들의 행적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는데,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로마사 논고>를 읽었다거나, 유럽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훨씬 편하게 이해될 것이다.

virtu와 fortuna

군주론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을 꼽으라면 virtu와 fortuna가 있다. 번역이 잘 되어있어서 많은 뜻을 가진 두 단어가 적절하게 해석되어 있어 읽기가 수월했다. virtu는 역량, 힘, 능력 정도로 해석되고, fortuna는 행운, 운명, 호의 정도로 해석된다.

군주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역량이나 운명이다. 마키아벨리는 두 가지 길에 맞는 해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역량에 의해 군주가 된다고 해도, 운이 빗겨가면 망하고, 운이 좋아서 군주가 된다 해도 개인의 역량이 부족하면 쇠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군주로서 그가 더 중시하는 것은 virtu이다. 군주론을 읽다 보면 마키아벨리는 운명론자처럼 보이지만 어느 정도는 자유 의지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군주가 되려면 여러 가지 역량을 키워야 위기가 다가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정한 이치.

사랑과 두려움

그러면 좋은 역량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말이 책에 쓰여있지만, 나는 관후함과 인색함, 사랑과 두려움을 비교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마키아벨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관후함보다는 인색함을 추천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사랑과 관후함은 쉽게 잊기 때문이다. 사랑을 많이 주면 인망은 높아지겠지만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그를 배신하기는 쉽다. 하지만 두려움을 가진 군주라면 배신한 이후가 두려워 등을 돌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이론이다.

개인적으로 동감한다. 영화 <부당거래>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실로 이렇다. 아랫사람을 다루다 보면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군대의 예로 들자면, 무서운 선임은 쉽게 대하지 못한다. 뒤에서 험담할지는 모르지만,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해주는 선임을 본다면,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고 권리는 권리대로 누리게 하고 의무는 약하게 지워준다면? 그 후임은 선임이 자기 아래에 있는 것 마냥 떠들게 되고 결국 선임의 위엄은 없어지고 통제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군주로서 위엄이 없어진다면 이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사랑으로 통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랑을 주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한 두명 생기고, 무리를 형성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군기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두려움에는 있다. 악덕으로 분류되지 않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군주론에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들이 많이 들어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한 그룹의 리더가 되기 마련이다. 다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읽은 책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군주론에는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과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마키아벨리만의 답을 던지고 있다. 물론 그의 말이 모두 옳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