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다짐하며 되새기며 상상하며> 책 리뷰 중, 야구선수 권두조씨의 일화를 언급했습니다만, 인생의 어느 국면이나, 혹은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도, 화려한 주연과 주인공보다는, 그를 뒷받침해주고 빛나게 해 주는 조연의 역할이 더 필요하고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도 잘생기고 키 큰 주인공들(이들은 대체로 연기력이 빼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죠)보다는, 감칠맛 나는 조연들의 활약에 의해 극(劇) 흥행의 성패(盛敗)가 좌우되는 수가 많죠. 써포트, 조연, 지원책은 그만큼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 혹은 프로젝트에서도 중요한 비중이고, 음식이 썩지 않게 하는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들인 가무샤라 응원단은, 놀랍게도 응원을 직업,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소 놀랍기도 하고, 그런 걸로 과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당혹감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생산 활동의 구조, 시스템은 유사한 면이 많아서, 이들 직업 응원단을 보는 시선은 우리나 일본이나 선입견으로 가득한 게 서로 비슷합니다. "나이가 몇인데 그런 일을 하고 다녀?" "바보 아냐?" 같은 반응이 우선이죠. 가무샤라 응원단의 홈페이지에서, 그들의 사진을 잠시 가져와 봤습니다.

이렇습니다, 다분히 코믹하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이런 가볍고 실없는 일에 종사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그런 시선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환영하겠다는 듯 멤버들은 구태여 저런 표정을 프로필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재밌기도 하고, 스스로 내세운 컨셉대로 자진해서 바보가 되겠다는 그들의 다짐을 저리 가식 없이 구현하는구나 하는,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존경심이 일기도 합니다.

이 책에 나온 첫번째 사연은, 아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책임감이 대단했습니다. 가업(家業)을 물려 받을 수도 있는 아들이, 자신의 직능을 부실하게 익힌다면, 평생 숙련된 목수로서의 평판에 존재의 큰 자긍을 걸고 있는 자신의 기대에 반할 뿐 아니라, 험한 세상을 자신의 힘만으로 헤쳐 나가며 살아야 할 자질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의 기대와 훈육 방식이, 아들에게는 무관심과 냉혹함으로만 다가왔는가 봅니다. 아들은 어느 날 집을 나갔고, 그 이후 소식이 들려 오지 않았다가, 이제서야 아이 하나까지 딸린 어느 재혼 여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소식을 전해 온 것입니다.

아들은 가출 후, 객지에서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직업 목수로서 홀로 서게 되었습니다. 자립을 하고 보니, 아버지의 깊은 뜻에 대해 그제서야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군요. 게다가 일생을 같이하고 싶은 여성까지 만나고 보니, 아버지에게서 진심 어린 인정을 받고 싶었다는 겁니다. 한편, 아버지 역시 그 딸을 통해 이 응원단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의뢰인 신분으로서 응원단과 따로 만남을 갖습니다. 간만에 접한 아들의 태도를 보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건데, 아마도 아들이 사랑하게 된 여인의 힘이 크지 않았나 하는 판단에, 과거 자신의 살갑지 못한 태도를 크게 뉘우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의뢰 건은 응원단으로서는 발족 초기에 맡게 된 일이었습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고, 이 일도 직업이니만치 반드시 성사(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화해)를 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습니다. 그런데, 응원단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응원단만의 이벤트 전개로는 그저 형식적인 악수, 포옹, 덕담 교환에 그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분명 아버지와 아들 모두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화해를 원하지만, 오랜 감정의 골이 깊다보니 막상 얼굴을 보면 서먹서먹하고, 자칫하면 과거의 섭섭한 기억 일단이 살아나서, 대사를 더 그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응원단이 낸 아이디어는, 아버지를 응원단에 참가시키자는 것입 니다. 아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버지에게 기상천외한 역할을 맡게 하여, 부자가 상봉하는 그 순간 두 사람은 물론 예식장 전체를 감동에 푹 젖게 하자는 게 그들의 구상이었습니다. (자세한 사항과 그 결과는 책을 찾아 보시구요)

내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게 아니라, 남을 주인공으로 모시며 그에게 최상의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발상은, 아무리 그게 돈을 받고 맡는 직업상의 일이라고 해도 아름답고 뜻 깊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선의(善意)만으로 다 잘 풀려 나갈 수는 없습니다. 요령이 있어야 하고, 껄끄러운 일을 풀려 나가게 하는 수완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위기에 봉착하여 얼마나 그를 잘 타개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융통성으로도 표현되는데요. 이 첵에 마지막 사연으로 실려 있는 이야기를 잠시 적어 보겠습니다. 프랑스로부터 응원 프로젝트를 위해 초빙을 받았으나, 막상 일본에서 하던 대로 응원을 펼치니 아무도 호응을 안 해주더랍니다(당연합니다, 가 본 분들은 알지만 프랑스인들 인종 차별 의식 강합니다, 게다가 응원이란 그 나라 고유 문화의 패턴이 있어서, 표현 양식과 감정 표출 방법이 다른 이국에서 통할 리가 없죠. 이 책에는 안 나와 있어도 아마 웃음거리깨나 되었을 겁니다). 이 난관을,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어떻게 이들은 헤쳐나갔을까요? 이 부분이, 우리의 자기계발에 응용할 수 있는 실무적 포인트이자, 이 책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응원단, 사람들에게 성공을 위한 활기와 긍정 바이러스를 불어넣는 작업, 그리고 어느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개입하여 꼬이고 상처받은 인연과 관계를 개선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영위하는 사람들은,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보통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겠다는 판단이 어느 순간 들었습니다. 판에 박인 제스처와 구호를 외치는 걸로 다 때운다면^^ 누가 이들을 다음 이벤트에 부르려고 하겠습니까? 이들이 건성으로, 요란한 시청각 효과에 기대어 겉치장에만 힘쓰는 집단이었다면, 아마 그 부친을 이벤트에 참여시킨다는 발상 자체를 하질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돈은 받았으니 일 한 티는 내려고, 오히려 당사자를 배제했을 가능성이 크죠. 이들은 철저히, 해당 아버지-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가족의 입장에서 발상의 출발점을 잡았습니다. 방법은 하나였죠. 내심은 그렇지 않았으나 겉으로는 한없이 무정해 보였던 권위를 내세운 아버지가, 먼저 그 외양을 해체하고 아들에게 진정성 있게 나가서는 게 유일한 해법이었던 셈입니다.

이 응원단은 직업으로서 응원 프로젝트를 펼치며, 사람들 사이에 프로페셔널로 각인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벤트 기술은 누구나 보고 따라할 수 있고, 자본만 어느 정도 갖추면 화려한 행사를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겠다는 사업가의 영리적인 자세를 버리고, 오로지 의뢰인의 눈높이에 서서 진정성 있는 문제 해결을 "함께" 모색하는 따뜻한 마음은, 아무 사업자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응원단은 차라리 모든 "기업"의 귀감이 될 만도 합니다. 시대가 크게 바뀌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분야, 어느 상황에서나 강조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도 이전과 달리 정보에 밝고 영악해져서, 어느 기업이 영혼을 지니고 자신의 스토리를 벌여 나가며, 어느 기업이 썩은 양심과 위선적 태도로 사회 봉사의 시늉만 내는지는 다들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응원이라니, 어설픈 시도와 기만적 이벤트업이었다면 필패(必敗), 필망(必亡)의 결과를 보았을 겁니다. 이들은 철저히 바보가 되길 자처했는데,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에고가 없는 바보의 눈높이라야 고객, 의뢰인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일찍부터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가장 어리석은 이의 자리에 섬으로써, 가장 까다로운 사업 분야의 빛나는, 독보적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등 사업자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며, 진정성과 공감이야말로 자본주의 3.0을 운위하는 작금에 오히려 기업의 새로운 살 길이 아닌지에까지 시야를 넓히게 도와 준 책이었습니다.

我武者羅는 일본어로 "무슨 일을 앞뒤 생각 없이 덮어놓고 함"이라는 뜻이라네요(출처: 민중서림 일한 사전). 我武者까지가 어근이고, 羅는 큰 의미 없는 접미사입니다(우리말의 '-짜' 정도?). 물론, 이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는 건 아닙니다. 그들의 무모하고 앞뒤 안 가리는 모습이, 타인에게 기쁨과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의도된 "바보짓"이기 때문이죠. 아름다운 조연, 단역이 결국 사회 전체를 원활히 기능하게 하는 양념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모두가 잘나고 똑똑한 맛에 사는 까닭에 분쟁과 대립으로 치닫는 씁쓸한 현실 중에서, 반어적 교감과 모범이 됨은 많은 독자들이 동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