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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아주 정상적인 악] 악은 태초부터 인간과 동행했다

*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요제프 F.의 행위. 그는 딸을 24년 동안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에 감금시켜 놓고 지속적으로 성폭행하였다. 그리고 딸과의 사이에서 8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들 역시 태어나서 줄곧 창문도 없는 지하실에 가두어 놓았다.

* 한 엄마의 통제 불능의 행위. 그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계속해서 울자 아기를 벽에 집어 던져 수많은 골절상과 뇌와 척수에 치유 불가능한 장애를 입혔다. 그로 인해 아기는 평생 심각한 병약자로 살게 되었다.

* 제프리 라이오넬 다머의 식인 행위. 그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17명의 소년(대부분 동성애자)을 유혹한 뒤 가두어 놓고 살해하기 전까지 괴롭히며 여러 차례 성폭행하였다. 또한 그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그 일부를 먹기도 했다.

이런 모든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행동들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 아닌, 상당히 계획적인 면을 보인다. 범죄자들에게서는 냉혹함과 심각한 정도의 사디즘이 확인되었고, 비인간화된 희생자들에게서는 엄청난 피해가 확인되었다. 이런 행동은 스스로 정상이라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혐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악의 몇 가지 근본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독일의 시인이자 풍자 화가인 빌헬름 부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악을 적절하고 압축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선이란 우리가 행하지 않는 악이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가난과 고통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위해서 등산로 옆에서 죽어 가고 있는 미국 출신의 의사 닉스 안테차나 박사를 얼어 죽도록 방치한 40명에 이르는 산악인의 행동 방식 같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악은 태초부터 인간과 동행했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며, 현재적이면서 시간을 초월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악을 쫓아내고 악에 대해 침묵하려고 애를 쓸수록 악은 우리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우리가 악에 관한 고찰을 할 때 우리 자신이 악한 환상, 악한 계획, 악한 행동과 관련이 있는지 구별해야만 한다.

사실 모든 인간은 악한 생각과 사고를 지니고 있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자기 안에 있는 공격적인 충동과 욕구를 느낀다. 그러한 머릿속에서의 과정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즉 머릿속으로 상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어 주고 갈등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효과는 조금은 진부한 그림, 놀라운 상징적 언어 그리고 분명한 해결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적인 공격성과 두려움을 진정시켜 주는 동화의 효과와 유사하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생각을 아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좋다. 올바른 생각에 대한 도덕적 부담 때문에 내적인 게임 방식과 연습 방식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악한 생각으로부터 끔찍한 세부 내용들이 갖추어진 악한 계획이 세워진다면 개인의 자유와 책임감의 영역은 부분적으로 포기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즉 생각, 사고 그리고 계획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는지, 경계선이 내부에서 외부로 넘어가 실현을 위한, 악한 행동을 위한 걸음을 내디뎠는지가 문제가 된다. 사람의 의지가 통렬한 감정, 지나치게 격화된 흥분, 한 그룹의 강력한 압력 혹은 대중의 공감된 흐름 때문에 그리고 알코올과 마약의 영향 혹은 정신적인 질병 때문에 더 많이 방해를 받을수록 악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경계선, 자유로운 결정과 질병으로 인해 유발된 자유롭지 않은 행동 사이의 경계선이 더욱 많이 정상의 위치를 벗어나게 된다. 또한 이해력이 분명할수록 더 악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어떤 범행의 뒤에 숨겨져 있는 계획이 더욱더 정상적인 상황에서 준비될수록 그리고 범인이 감정적인 영향, 중독, 정신병리학적인 현상 혹은 뇌 손상 등에 의해 방해를 덜 받을수록 그 범행은 더욱 극악한 행위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범행의 계획성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범인의 특징 파악부터 악의 수량화, 악한 행동의 사악한 정도를 파악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감성은 어떤 시대에서든, 어떤 문화권에서든 도덕적으로 묵과될 수 없다. 심각한 죄로 간주되는 행동들은 특별히 혐오스럽고 사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법률에서는 살인, 성폭행, 절도를 그 어떤 법률적·종교적 평가와 상관없이 악한 행위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마치 유전적으로 주어진 선과 악에 대한 구별 능력과 같은 어떠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러한 ‘도덕적 본능’을 더욱더 자세히 규명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즉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특정한 사회 규범의 준수, 타인의 권리에 대한 배려, 이기적인 욕심의 억제, 무엇보다도 인간 삶의 파괴를 방지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천적인 인간의 도덕적 본능의 문제를 연구했던 생물학, 심리학 그리고 철학계의 학자들은 도덕과 다른 가치의 중심 척도는 세계적으로 비교가 가능하고 결코 각기 다른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양심이라는 것이 실제로 유전자 안에 들어 있는지, 우리가 정의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는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말하자면 이러한 ‘자연의 이성’이 선천적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악이란 도덕적 본능이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실행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신체적•정신적 혹은 사회적인 안정을 조준하는 행동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