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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아주 정상적인 악] [프롤로그]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악을 파헤치다

필자는 법원으로부터 범죄자들의 인성을 파악하고, 그들의 범행 동기를 분석하여 그들이 분명한 이성을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혹은 병적인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확인해 달라는 연구 위탁을 받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

성범죄자와 연쇄살인범, 테러리스트, 강도, 유괴범, 나치 범죄자, 어린 살인 광란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범행 동기와 감정 상태에 대해, 희생자와 범죄 과정에 대해, 그들의 인생사와 오늘날의 관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악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악의 근원은 병적인 기질과 힘겨운 생활 환경의 영향 속에, 악몽이 된 어린 시절의 경험과 사회적인 비극 속에, 나쁜 본보기와 잘못된 친구로 인한 정신적 각인 속에, 과열된 감정과 범죄 집단의 강압 속에, 전체주의적인 체계의 지배권과 나치들의 자기우월주의 속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으로 인한 혼돈 속에, 무엇보다도 상처 받은 경험 속에 숨어 있었다. 마음의 상처는 단순히 어떤 사람을 아프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로 만들기도 한다.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동기는 놀랍도록 평범했다. 언젠가 단 7유로 때문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경계 표시, 즉 저렴한 농지의 단 몇 제곱미터의 차이가 대량 학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악은 순간적인 두려움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염두에 둔 끔찍한 계획에 따라 벌어지기도 한다. 악의 이면에는 광적인 사고와 심리적인 상처, 망상적인 생각이 담겨 있어서 악이라고 말하기보다 병적인 행동이라고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우리는 한 폭력 범죄의 냉철한 계획과 무자비한 실행 때문에, 평범한 인간의 모습 뒤에서 나타나는 무섭고 사디즘적인 환상 때문에 깜짝 놀라곤 한다. 스스로도 희생자였던 많은 범죄자의 운명 속에서 우리는 악이 또 다른 악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악의 순환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범인은 자신들의 범죄적 행동이 어떤 장애에 의한 것, 병적인 것, 자신의 기본 인성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의식적인 심층심리학 과정 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영혼의 몰락’에 있다고 추측한다. 그럼으로써 죄는 책임이 훨씬 덜해 보이는 나쁜 영혼의 힘으로 전가된다. 범인들은 이런 변명을 자주 늘어놓곤 한다.

“내 의지가 아니었어요. 그 순간 난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같았어요.”

이런 범죄자들과 그들의 행위가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투영될 때는 지극히 관념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악이란 것은 범죄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의 내면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은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의 존재를 추측하거나 예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상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 가까이에서 범죄가 일어났고 그 범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이때 우리는 어김없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럴 리 없어요.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에게서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하루이틀이 지나면 우리의 평가는 달라진다. 범인은 매우 독특한 사람이었고 종종 이상한 행동을 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그 평가는 더욱 확대된다. 오래 전부터 그 사람이 어떤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악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은 물론 자신의 내면에도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악을 투영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부에 들어 있는 악에 대한 두려움을 내쫓으려고 한다. 작가 막스 프리슈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와 동일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나와 동일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동일한 책, 동일한 음악, 동일한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동시대인들이 결코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그런 가능성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확신은 어디서 얻겠는가?”

악이란 지극히 강압적이고 위협적이며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표현하기 어렵고, 아주 멀리 있는 동시에 아주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매우 강렬한 매력을 발산한다. 악은 센세이션의 욕망에만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몰락이라고 표현하는 영혼의 측면에 관심이 가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얼굴과 이름을 부여하고 싶은 욕구와도 연관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 그리고 이름이 불려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악한 범죄’를 생각할 때 ‘살인 광란’ 혹은 ‘가정 비극’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범죄만을 떠올린다. 그런데 악의 새로운 형태가 잠재적인 범죄 현상, 인터넷 포르노 사진 혹은 대규모 사기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악은 떠들썩한 범죄와 끔찍한 행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섬세한 형태로도 자행된다. 즉 냉혹함과 거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 모략과 억압, 이해심 결여와 순수한 이기심의 형태로 나타난다.

많은 연구가가 범죄자의 심리적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몇 가지 특징을 전형화시키려는 시도를 했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범죄 동기와 이론에 대한 수많은 학술적 지식이 큰 도움이 되고 있고, 성격과 뇌 연구에 대한 최근의 지식들이 또 다른 측면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뇌 진찰 방법들, 즉 뇌전도, CT 촬영, 심리역학적 진단, 시험심리학 등이 많은 것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은 어떤 가설로도 설명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론으로도 이해될 수 없다. 이 부분은 인간 의지의 자유, 바로 선 혹은 악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관련되어 있다.

이해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악의 측면들을 구체적인 사례들과 범죄 스토리, 악행에 관한 실제 이야기보다 더 잘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악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생물학, 신학, 유전자 연구, 정신병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악의 존재를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개별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악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