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상 충돌되는 제목이 상당히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물론 조선시대 실학자로서 어느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잘 알고 있는 무관 이덕무의 글들을 뽑아 정리한 책이라면 제목에 '바보'라는 표현이 다소 의아할 지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故 노무현 전대통령을 대통령 선거 후보시절 TV광고방송에서 '바보 노무현'이라고 표현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바보'는 바로 우직함과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이들을 현실에서 지칭할 때 쓰는 용어이다.

결국 <책에 미친 바보>는 한결 같이 책을 벗삼아 자신을 수행하고 또 세상을 바라보는데 냉철했던 이덕무 선생을 표현하는데 그런 면에서 가장 적확한 선택이 아닐까싶다.

이덕무는 북학파로서 유명한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영재 유득공 등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넓힌 선비였다. 평생 2만여권에 가까운 책을 독파하는 등 책과 함께한 인생으로서 책을 읽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낸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본문 51페이지)

 인간의 도리중 가장 당연한 일이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도 배움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당연한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또한 이덕무는 다양한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으며 자신만의 독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이 책을 통해서 나타낸다. 그리고 아무리 옛날 인정받았던 책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냉철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안타까워 한다. 그러기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인과 그들의 문장은 그로 인해 재해석되고 새로운 시각으로 탄생된다.

 하지만 그는 백면서생도, 말만 내세우는 책상물림도 절대 아니었다. 공맹사상과 주자학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도학을 말한 <성학집요>와 조선의 경제를 논한 <반계수록>, 사람을 살리는 방도를 다룬 <동의보감>을 좋은 책으로 꼽으며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일로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문만 숭상하는 세태를 안타까워 했다.

<책에 미친 바보>는 이덕무의 책에 대한 자신의 글 외에도 지인들에게 보내는 다양한 편지와 평생 가난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다 요절한 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회한을 소개함으로서 선비로서의 삶 못지 않게 인간 이덕무로서의 삶에 대한 일상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최근 몇년간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조선조 실학사상가들의 글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어서 상당히 반갑다. 시류에 휩쓸려 자신이 가진 가치관마저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요즘, 아니 도대체 자신만의 굳은 신념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이들이 지도층을 이루고 엘리트로 존경받는 현 시대에 이들이 삶과 신념을 나타낸 글들은 신선함을 넘어서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오직 돈에 모든 것이 이뤄지는 시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난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책에 의지하고 문장에 마음을 담으며 자신의 뜻을 늘 지켜나가는 그들이 생경할지 모른다. 하지만 물욕에 눈이 멀어가는 우리에게 이덕무의 글은 결코 답답한 선비의 세상물정 모르는 목소리는 절대 아니다. 바보는 그가 아니라 바로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