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잔잔한 오키나와 여행기, 고현정의 여행 여행

이 여행에세이가 다른 에세이들보다 뭔가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여배우, 그것도 톱 여배우가 쓴 여행 에세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여행 책을 보고 떠난 여행을 담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별한 점 때문에 여행 에세이를 꽤 읽어왔지만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오키나와 여행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 일본 만화에서 마치 우리나라에서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듯이 오키나와 여행을 가는 내용을 본 적이 있지만, 여행 에세이로 접한 적은 처음이었다. 익숙한 듯 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던 상태였던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쓴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이라는 책을 읽고 그 책에 소개된 장소들을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사실 프롤로그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 책은 단순히 여행지를 '오키나와로 결정하게 된 계기였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보다 그 책의 영향이 큰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궁금해졌다. 그 책이 이야기하는 오키나와는 또 어떤 모습일지.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면 찾아서 읽어보고 싶었다. 아무튼 그 책의 저자가 소개한 곳들은 참 매력적인 곳들이 많았다. 소박하고 따뜻한 매력이 숨쉬는 곳. 오키나와란 그런 곳일까.

귀에만 익숙했던 오키나와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된 책.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은 '배우 고현정'을 '사람 고현정'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책이기도 했다.

여배우란 직업은 화려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 '화려함'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매력을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배우 고현정'에 대해 생각했던 이미지 역시 그랬다. 그녀가 비교적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들을 연기한 작품들만을 봤기 때문에 그녀는 연약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느꼈던 '사람 고현정'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앞부분에서 밖에 잘 안 나가는 타입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거기에 여행을 하면서 그려진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채식 식단을 좋아하고, 유명한 브랜드제품보다는 각각 다른 매력이 깃들어 있는 소박한 소품들에 매력을 느끼는 모습들에 편안한 느낌이 전해졌다. 무엇보다 고현정이 생각을 담아낸 글들에 매력을 느꼈었다.

삶의 순도를 높이려면 집중해야 한다. 이 시간은 다시는 안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메모를 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가끔은 내 내면의 잠재된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다른 목소리가 있으면 좋겠다. 또는 단순히 소외시켜버리고 싶지 않은 감정을 술 먹고 울거나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 토해내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가 다르게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p.101)

또 고현정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에 삽입된 다양한 책 속의 문구들, 노래 가사들, 시들이었다. 여행 이야기 중간 중간 끼워져 있어서 여행의 감성을 더 잘 전해주고 있었다. 또한 저자의 성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잔잔하고, 솔직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 같은 성향. 알았던 내용도 있었지만 몰랐던 좋은 글들을 알게 되어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읽는데 시간이 걸린 편인데, 그건 좀 빽빽하고 작은 느낌의 글씨 때문이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익숙치 않아서 이야기 속에 좀처럼 푹 빠져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여행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점점 빠져들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빠져들게 되니, 빽빽해 보이는 글씨는 그만큼 충실히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책 또한 겉모습 보다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