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 균형이 잘 갖춰진 러시아 여행기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어봤지만, 러시아에 관한 여행 책은 그다지 읽어 본 기억이 없는 듯 해서 읽기로 한 여행 에세이였다.

비교적 균형이 잘 맞춰졌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정보와 저자의 에피소드 및 생각이 담긴 에세이의 균형이. 물론 언제나 더 끌리는 건 에세이 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여행을 직접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리만족을 위해 읽다보니 저자의 '경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착은 했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갑자기 두고 온 많은 익숙한 것들이 미치게 그리워지면서 지금이 조금은 후회되는 순간. 나에겐 그것이 여행 첫날 아침이었다. (p.27)

이렇게 조금은 후회를 안고 시작한 여행. 하지만 여행이 진행되면서 저자는 점점 러시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들도, 그녀가 풀어놓는 러시아 곳곳의 매력을 가득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때 예술 분야, 그러니까 미술관이나 박물관, 건축물들을 보는 걸 좋아해서 그런 부분에 끌렸다. 특히 러시아를 포함해 동유럽지역은 종교적으로도 좀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그 종교적인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지역마다 미술 경향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들을 볼 수 있을 미술관들도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여행자에게는 신기하지만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지하철이란 그저 싸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일 뿐이다. 잠시도 주춤거릴 새 없이 빠르게 걷는 모스크바 시민들을 따라 환승 통로를 걷고 있으면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오직 또각또각, 뚜벅뚜벅 발소리만 들릴 뿐이다. (p.40)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 나라와 닮은 면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우리 나라에 여행 오는 외국인들도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 나라 지하철 역사가 예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통 수단에 특별함을 느끼지 않고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모습들은 어쩐지 우리와 닮아보였다. 결국 같은 공간이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여행자인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느꼈다.

열어도, 열어도 계속 인형들이 나오는 마트로슈카. 러시아는 내게 어쩌면 마트로슈카와 비슷한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비로소 진짜 매력을 알게 된 것, 열어도 열어도 계속 나오는 인형처럼 아직도 그 얼굴을 다 보지 못했다는 것, 러시아는 내게 마트로슈카와 같다. (p.180)

러시아의 전통 인형인 마트로슈카에 빗대어 러시아의 매력을 이야기한 부분. 잘 알지 못했던 나라이기에 계속 계속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저 추운 기후의 나라라고만 생각했던 러시아 곳곳의 매력을 느끼게 된 저자의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저자가 느낀 것들을 자연스레 전해받게 된다. 이 책에는 다 담지 못했을 러시아의 매력들이 또 있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잘 읽혔던 여행에세이였다. 이 책을 계기로 러시아 여행 에세이를 또 찾아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다른 매력을 가진 러시아에 대해 더 알고싶어졌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