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밤부티 피그미
- 콜린 M. 턴불,『숲 사람들』을 읽고

 혼자 헤매는 숲은 확인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습한 기운, 살갗에 달라붙는 온갖 벌레들,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짐승 등 극한의 공포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일반 사람들이 드나들기 힘든 베일에 싸인 ‘숲’과 그곳에 살고 있는 ‘숲 사람들’을 진실하게 그려낸 사람이 있다. 바로 인류학자 콜린 M. 턴불이다. 그는 콩고 이투리 숲에서 ‘밤부티 피그미’들과 함께 살았던 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숲 사람들』을 펴냈다.

 이 책에는 피그미의 성장과 죽음, 성년식, 결혼과 성문화, 마을 흑인들과의 공생의 법칙, 숲을 훼손하거나 거느리지 않고 온전히 숲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방법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피그미와 마을 흑인들과의 관계다. 피그미는 마을 흑인들에게 숲의 산물인 고기와 꿀을 제공하는 대신 마을에서 경작되는 쌀, 콩 등의 농작물을 제공받는다. 생존을 위해 물물교환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단순한 관계라면 흥미로울 것이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마을 흑인들이 피그미들의 마스터임을 자처하며 주종관계를 확립 하려는데 있다. 그렇다면 피그미는 어떨까. 겉으로는 흑인들의 말을 잘 따르는 듯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마을 흑인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 흑인들은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동물, 악령, 피그미만이 사는 사악한 곳이라 여기며 숲에 접근을 꺼려한다. 이들에게 피그미는 의혹을 증폭시킬만한 이야기를 퍼뜨려 접근을 원천 봉쇄한다. 피그미들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영역 ‘숲’을 갖게 되는 것이다. 흑인들과 맞대응하는 법도 없다. 그들이 옳기 때문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다. 따라도 될 만한 것에는 토를 달지 않아 분쟁의 씨를 남기지 않는다. 종종 마을에 머무를 때가 있는데 그것은 다양한 먹거리로 융숭하게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마을 흑인들은 그들이 피그미들을 길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숲에 돌아온 피그미는 즉시 고유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피그미에게는 남보다 잘살기 위한 이권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냥이 있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캠프를 떠나 사냥에 동참한다. 배분이 이루어질 때도 큰 불만이 없다. 각자의 역할대로 합당한 몫이 주어진다 생각하므로 결론은 언제나 단순명쾌하다. 죽음에 대한 애도는 절실하며 깊이 있되 슬픔 속을 오래 헤매지는 않는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특유의 낙천성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피그미는 매일을 축제처럼 즐긴다. 사냥감을 따라 이동생활을 하는 그들은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날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다. 숲이 좋아 숲에 살고 체질적으로 숲이 아닌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 그런데도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한 부류의 인간들은 당치않게도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를 일삼는다.
 지금 이 피그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간의 삶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지만 발전이라는 것이 모든 인류에게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삶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더 행복한 피그미들처럼 말이다. 숲을 존경하며 완벽하게 순응하며 사는 그들을 만나는 동안 유쾌하고 즐거웠다. 오늘은 꿈에서라도 피그미가 들려주는 천상의 소리, 몰리모의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리고 켄게, 모케 노인, 은조보 같은 피그미들의 이름을 조용히 되뇌어 보고 싶다.

 여러 학자들에 의해 관찰 당하고 수치로만 기록되어오던 원시부족들이 오늘날에는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가까이에서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연구하고 직접 체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두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콜린 M. 턴불이다. 기존의 인류학이 관찰로 일관하던 보고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사람 자체와 개인의 삶’에 주목한 첫 사례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저자가 피그미인 ‘척’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피그미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961년 출간된 이래 미국 아마존 서점 장기 베스트셀러로 입지를 굳혀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되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진실하다. 중간 중간 사탕발림이 잘되어 있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랄까. 피그미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던 나 같은 사람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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