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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책으로 재해석한

카이로스아트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엄마, 무서운 꿈 꿨어~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꿈.

그런데 눈 떠보니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어린시절, 어렴풋이나마 나도 이런 꿈을 꿨떤 것 같다. 분명 무서운 꿈을 꿨을 테고, 그 중 단연 무서운 꿈은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꿈이었을 것이다.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생생해서 그 느낌은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무서운 꿈은 안 꿀 거야' 라는 엄마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대신 무서운 꿈에서 깨어났을 때 엄마가 있다면, 엄마가 옆에 있다면 안심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너르고 따듯한 그 품속에서라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가을바람이 산들 불어오는 공원 벤치에서 엄마의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다 깜빡 잠이 들어버리는 앨리스. 안경을 쓰고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보고선 놀란 마음에 따라 나서다 그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굴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이 둥둥 떠오른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그 곳에서 무사히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게 된다. 앨리스가 따라온 하얀 토끼는 지구 반대편 굴에서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데, 그 문이 너무 좁아서 앨리스는 빠져 나갈 수가 없다.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생각에 펑펑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이 차고 넘쳐서 눈물바다가 되고 만다.

'작아지는 약을 마셔'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원의 말을 듣고 앨리스는 탁자위에 놓인 작아지는 약을 마신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트위들 쌍둥이 형제를 만나고, 애벌레, 체셔 고양이, 모자 장수 등 다양한 만남 속에서 색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키가 작아서 고민이라는 앨리스에게 애벌레는 키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뜻의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오색찬란한 나비로 변해 어둠 속을 홀로 밝히며 날아오른다.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신비로운 경험을 꿈속에서 하게 된 앨리스가 부러워지는 대목!

앨리스의 꿈은 못된 여왕이 사는 성에서 절정에 치닫게 된다. 토끼를 따라 정신없이 내달리다 도착하게 된 성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사형시켜버리는 어마무시한 여왕이 산다. 용감하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앨리스까지 사형 대상이 되고 마는데, 때마침 체셔 고양이가 나타나 도와준다. 또 때마침 하얀 토끼까지 나타나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앨리스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 토끼가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까지 보여드린 몇몇 장면에서 짐작했듯이 새롭게 태어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꿈속으로 빠져들며 엄마가 읽어주던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기발하고 독특한 설정인지. 앞서 대부분의 그림들이 책 혹은 책의 조각들로 되어 있는 걸 발견하며 재미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앨리스가 지금까지 했던 모험들이 어쩌면 엄마가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어 준 책장 속에서 펼쳐졌을 수도 있다는 재미있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지금까지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려줬지만, 실은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앨리스의 줄거리를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림에 대해 말하고 싶다.

기존의 그림동화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일러스트에 매혹되었다고 할까. 그 모티브가 '책'이라는 게 놀랍고 또 재미있다. 이제까지 앨리스가 책의 처음부터 다음 페이지들을 차례대로 넘겨가며 모험을 했던 거라면 지금부터는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가며 재빠르게 도망치고자 한다. 여왕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일수도 있지만, 실은 하얀 토끼가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며 엄마에게 돌아가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다. 온 몸에 힘을 주어 달리고 또 달리는데도 결국은 코 앞까지 여왕이 와 버렸다. 너무 무서워 눈을 감고 엄마를 생각하는데 그만 몸이 낭떠러지로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엄마, 엄마!

아, 엄마다. 엄마 품이다. 분명 무서운 꿈을 꾸었는데 하나도 두렵지 않다. 가을 노을이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나는 엄마 품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바로 그 품 말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 읽는 것처럼 푹 빠져들었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공원 벤치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스르르 잠든 앨리스를 상상한다. 그 앨리스가 나인 양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엔 이야기가 아닌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카이로스아트에서 새롭게 펴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책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 모티브가 되어 앨리스의 꿈은 책의 조각조각 혹은 전체가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독특하고 재미있고 새롭다.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원작의 즐거움 못지않게 재해석의 신선함 때문인데 카이로스아트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재해색 된 것 같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려서 이해할까 싶다. 아껴 읽으며 소장했다가 초등학생 쯤 되면 이 책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는 다시 소중하게 간직했다 어느 순간 또 한 번 읽어주고 싶다. 아이가 성장해나가는 동안 순간순간 이 책을 만나게 해주리라. 그 때마다 이야기는 아이의 상상 속에서 재해석될 것이고, 무서울 수 있는 앨리스의 모험이 어느 순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그 놀라운 경험을 내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글보다 그림에 집중하며 마음으로 곱씹을 수 있는 책. 아이가 성장해나가는 동안 카이로스아트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얼마나 다채로운 느낌으로 재해석 될까. 명작을 고전을 만난다는 건 늘 설레고 벅차다!

이상한나라의앨리스, 카이로스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