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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들었던 오성과 한음 이야기 중에서, 오성이 아버지에게 벌을 받아 쌀 한 가마니의 낱알 숫자를 셌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할일 없어서 죠리퐁 한 봉지의 갯수를 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과제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시간은 가까워 오고, 혼날 일만 남았던 오성에게 한음이 꾀를 내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우선 숟가락 하나에 들어가는 쌀알의 개수만 센 뒤 한 됫박이 몇 숟가락인지, 한 가마니가 몇 됫박인지만 세서 곱하면 됐다. 엄밀히 따지자면 정확한 개수는 아닌 셈이어서, 나에게 있어 그건 똑똑한 게 아니라 반칙이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요즘에 학교 수학 수업시간에 계산기 사용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나도 계산기가 반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수학>을 읽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수학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정답 맞추기가 아니라 수학적 사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p.63-수학의 본질은 '계산을 빨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책은 수학을 '학교 수학'과 '업무 수학'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우선 학교 수학은 □ + △ = [?] 처럼 주어진 문제를 계산해서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야 하지만, 업무 수학은 [?] - <?> = ■ 처럼 주어진 답에 맞는 문제, 즉 제시된 결과가 나오기 위한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훨씬 창의력을 요구한다. '매출 - 비용 = 예상 이익'에서 업무 수학을 활용한다면, 원하는 예상 이익에 맞춰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학교 수학은 혼자 문제를 풀고, 혼자 답을 찾아내고, 혼자 좋은 점수를 받으면 끝이지만, 업무 수학은 팀 단위로 일하면서 제3자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고, 팀원의 실수나 잘못이 있다면 명확하게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괜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매출이 전년도보다 120% 증가(100 에서 220으로)와 전년대비 120%(100 에서 20% 증가해 120으로)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출이 두배 이상 뛰는 경우가 드물어서 서로 눈치껏 의미가 통하긴 하지만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 책에서는 비율을 비롯해 확률, 평균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개념을 정확히 이해시켜 주고, 숫자의 마법에 속아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주의시킨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복잡하게 생각해서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중학생 수준의 수학으로 모든 내용이 이해 가능하고, 펜과 종이에 따로 계산할 필요도 없으니까. 복잡한 이론보다는 막연한 것을 구체적으로 가시화 시켜 주는 숫자의 힘을 비중 있게 다룬다. 예를 들면 상대방을 설득할 때 사소한 숫자 몇 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수학을 어렵게 느끼는 데는 동기부여가 잘 안 된다는 이유도 있다. 산수의 사칙연산만 알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에 졸업하면 더 이상 써먹을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 수학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업무 수학은 '답을 구하는' 학교 수학과 달리 '사용하는' 수학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학교 시험처럼 문제 자체가 주어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스스로 알아서 주어진 숫자에서 업무에 유용한 사실을 끌어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내야 한다. 동물의 다리 수로 마리 수를 알아맞히는 학거북산(算)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학교 수학과 업무 수학의 접근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학 = X, 거북이 = Y

X + Y =10, 2X + 4Y =32

X = 10 - Y, X + 2Y =16

10 - Y + 2Y = 16

Y = 16 - 10

∴ 거북이 6마리, 학 4마리

이렇게 학교 수학에서는 방정식으로 답을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이번엔 업무 수학식으로 해결해 보자. 우선 10마리 모두가 학이라고 가정한 뒤, 오차가 없어질 때까지 한 마리씩 거북이로 바꾼다. 계산 속도는 느릴 수도 있지만 '학을 거북으로 한 마리씩 바꿀 때마다 다리의 개수는 두 개씩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교 수학식으로 기계적으로 풀어서는 도저히 이끌어낼 수 없는 사실이다. 무슨 차이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면 실제 업무에서 활용되는 다음 문제를 통해 부분적인 숫자에서 전체적인 과정과 구조를 파악하는 예를 확인할 수 있다.

p.218-지금 업무 때문에 '허덕이고' 있다면 해치워야 할 일이 많은 게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999 X 8 = ? 이라는 문제를 풀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주어진 숫자 그대로를 곱하기 쉬운데, 이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서 풀면 (10,000 - 1) X 8 = 80,000 - 8 =79,992 로 암산만으로도 충분히 답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처럼 업무에서 수학적 사고를 갖게 되면 번거로운 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피할 수 있어 시간 활용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통계를 위한 샘플 수가 많을수록 예측 결과가 정확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차의 크기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샘플을 처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숫자에 약한 사람일수록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다고, 나오는 숫자는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강박을 갖게 되는데 수학적 사고를 통해 왜 꼭 그 숫자여야 하는지를 먼저 따져 봐야 한다.

책 초반에 더치페이 계산 문제가 나오는데, 정확히 인원수대로 나누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 좀 깎아주고 총무가 그만큼 남자답게 더 부담하는 대충 계산하기 방식을 소개하고 있어서 이게 무슨 수학인가 싶기도 했다. 회사 동료들에겐 센스쟁이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학교 시험에서 그런 답을 제출했다면 아마 선생님께 불려갔을 일이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100점 맞는 학생이 직장 생활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소리가 된다. 책을 읽고 인식이 바뀐 점이 있다면, 숫자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것은 얼렁뚱땅 대충대충 감으로 추측하는 것 만큼이나 안 좋은 습관이라는 것이다. 써먹을 수 있는 수학은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계산기의 유무보다 수학적 사고의 유무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