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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고집불통'이라는 코너엔 이래도 죽겠네~ 저래도 죽겠네~하며 항상 투덜거리는 영감님 캐릭터가 나온다. 그런데 죽겠다는 말을 듣고 저승사자가 찾아오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죽겠다던 태도를 싹 바꿔 갑자기 기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발버둥친다고 해서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긴 해도 삶의 자세를 죽겠네~에서 살겠네~로 바꾼 것은 큰 진전이라고 생각된다. 예나 지금이나 산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인데 현대인의 엄살은 예전보다 심해진 것 같다. 물론 옛날엔 사는 게 훨씬 단순했고, 지금은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게 사실이다. 시대가 좋아져서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게 되면서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등의 선택과잉에 시달리는 사람들... 거기에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까지 더해져 생각이 많아지면 잠을 설치게 될 때가 많다. 며칠 밤을 샌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고집불통으로 무의미한 생각의 노예가 되고 만다.

많은 책들이 정신적인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후일담이 대다수여서 공감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유를 누리려면 남다른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새벽 3시>는 2천 년 전 노예로 태어났던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잠언집이기에 '자유'라는 말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황제의 스승이 될 정도로 위대한 철학자였지만 그의 성공을 상업적으로 다루고 있지도 않고, 절름발이였던 그였기에 외적인 조건에서 벗어나라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p.68-삶에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목표는 자유입니다.

자유를 얻는 방법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지만, 역시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특히 죽음을 비롯해 늙고 병드는 문제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나마 미미한 수준일 거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라는 것 역시 우유통에 빠진 개구리처럼 금새 바꿔놓을 수 없다. 현실에선 안간 힘을 쓸수록 더 괴로워지기만 하는 문제들이 차고 넘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말 그대로 내적인 마음의 문제이지 외적인 조건에 적용할 수 없는 노릇이다.

p.184-우리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바라고

우리 힘으로 되는 것들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p.37-어떤 일이 생겼을 때 당신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일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것뿐입니다.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뜻대로 할 수 있는 일과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힘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려는 '혐오'는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에서만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에 맞서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고 실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심하게 흔들린다. 다른 사람의 칭찬에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바깥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는 내적인 평정을 유지할 수 없다. 또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놓쳐버린 다른 가능성에 미련을 갖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저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p.69-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말고 오직 당신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p.154-초심자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십시오.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보십시오.

자신이 알지 못함을 아는 것, 되도 않는 변명을 하지 않고

알지 못함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입니다.

불필요한 의미부여도 내적인 평정을 방해한다.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리면 상실감이 크다.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물건인데도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릇된 애착 때문이다. 죽음으로 아끼는 사람을 잃는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불가항력이고 언젠가 생길 일이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저승사자처럼 의인화시켜서 인격을 부여해 두려워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죽음이라는 관념이지 죽음 자체는 아니다. 결국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해석인 것이다.

p.173-다른 사람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판단을 유보하고,

우리 이해의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단지 조금 불편한 것일 뿐, 우열과 행불행에 직접적인 상관은 없는데도 덜 가진 사람이 많이 가진 사람보다 열등하고 훨씬 불행할 거라는 편견이 있다. 덜 가진 사람은 말 그대로 돈과 권력을 덜 가졌을 뿐이다. 술 취한 사람을 술주정뱅이라고 섣불리 비난하기 전에 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그는 그저 술을 많이 마셨을 뿐, 늘상 그런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p.79-대가를 치르겠다는 마음 없이 보답만 얻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의 순리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잃을 때 빼앗겼다고 억울해한다. 우리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듯이, 우리 손에 들어왔던 것도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잠시 맡겨두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 손에 있을 동안 그것을 소중히 여기면 된다.

p.174-인간은 점진적으로, 두 걸음 갔다가 한 걸음 되돌아오는 식으로 나아집니다.

에픽테토스는 인위적으로 완벽한 도덕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의 흐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면에서 전진 뿐만 아니라 후진까지도 수용하고 있기에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금욕이라고 하는 뭔가 까다롭고 거창할 것 같은 표현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의 절제 수준으로 문턱이 낮아진 느낌이다.

에픽테토스가 속한 스토아 학파 하면 금욕, 자연, 윤리, 논리, 이성 등의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리타분한 구식의 조언들에선 공자가 연상되고,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에선 노자가 연상되는 것이 어딘가 동양 철학적인 분위기가 다분하다.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고 핑계와 변명을 그만두라는 부분에선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 아들러 심리학을 닮았다. 쉽고 단순해서 실생활에서 적용하기 편리하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걱정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다면 생각을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인 새벽 3시처럼, 가장 고요하고 어두운 시간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집중력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