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백파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흙 이야기를 써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지금 이 책을 만날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영원히 백파선이라는 인물을 만날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 소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무궁무진한 사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대한 자료도 없이 단 한줄의 글만으로 소설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무지한 사람이라 이 책을 통해 백파선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되었다. 1623년경 조선 사기장 960명을 이끌고 아리타의 히에고바에 가마를 열었다는 기록 속의 인물 백파선. 오히려 그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이 책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 큰지도 모른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시아버지의 보물창고에서 몇백 년 전에 쓴 한통의 편지을 보게 된다. 편지 속에는 세 개의 막사발을 구워 안나라는 여자를 통해 어머니에게 보내고, 하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바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아버지는 두 개의 막사발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은 하나의 막사발을 찾기 원한다. 하루 아침 미망인이 되어 남은 재산 하나없는데 시아버지는 막사발을 찾아주면 위자료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현재의 이야기는 이렇게 막사발을 찾는 여정이 그려진다.

 

그렇다면 과거 속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광주의 한 관요에서 일하던 사기장의 딸 파선. 정실의 딸이 아니라 후실의 딸이였기에 여러 곳을 전전하다 상근의 가마로 들어와 그와 혼인하게 된다. 평화로운 삶을 살던 그들의 산막에 왜놈들이 들이닥쳐 왜국으로 떠날 것을 강요한다. 왜국으로 가지 않으면 모두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상근은 사람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을수 있다는 이야기로 먼 여정을 떠난다. 진주를 떠난지 한달 열흘만에 도착한 그들은 낯선 땅에서 어떠 일들을 마주하게 될까??

 

도공 노릇을 하느라 어미 노릇을 제대로 못해 미안하지만 사발을 만들어 온 일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삶에 끌려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산 것이다. 도공으로 산 것은 사발에 빠져 도공의 길을 선택한 자신의 의지이지, 누군가의 제안과 협상에 의한 강요가 아니었다. - 본문 250쪽

 

간혹 여자는 힘이 없고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파선은 결코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강자에게 나약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었던 막사발을 만들어 사람하는 사람과 어머니에게 남긴 파선.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며 자신의 사랑도 지키고 싶었던 여인. 불의 여신 백파선은 불처럼 강하고 뜨거운 그녀의 삶이 담긴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