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가 내 옆에 있었더라면 힘내라며 한없이 안아줬을 텐데...

그 소녀가 겪은 아픔, 상처 다 토해낼 수 있도록 등이라도 토닥거려줬을 텐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되는 게 정상인 것을, 힘들고 괴로우면 위로받는 게 정상인 것을...

자기 마음 속 상처가 곪을대로 곪아서 고름이 새어 나오고 있는데도 소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세월을 뛰어넘기라도 하듯 열 두살 이후 성장이 멈춰버렸다. “아니 성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 정확한 표현일 듯 싶다.

 

열 두살 소녀의 시선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꼭 ENG 카메라가 무대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을 쫓아가듯 소녀의 시선은 주위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나 심리,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또다른 삶의 이면들을 캡쳐해낸다. 감나무집에 모여사는 사람들의 아픔 하나하나를 족집게처럼 콕콕 짚어내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12살 소녀의 애늙은이같은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렇게 꿈많고 욕심많은 어린 소녀를 냉소적인 성격으로 창조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으로 작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소녀의 아픔이 점점 나의 아픔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고, 책을 읽을수록 그 소녀와 내가 동일시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냉소와 위트가 적절하게 가미되면서 어느 순간엔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고, 또 다른 순간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만큼 내 감정을 쥐락펴락한 소설이었던 은희경님의 『새의 선물』, 사람마다 고독이나 고통을 느끼는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기에 소설을 쓸 때에 주인공을 고통으로 울부짖거나 괴로워하게 하지 않고 참는 것으로, 반어적인 느낌이 듦으로써 그 주인공의 감정적 표현을 대신한다는 은희경 작가의 말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진부적이거나 복잡하지 않은 그녀의 감정 표현방식에 진한 여운이 남는 걸 보면 그녀 역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는 꽃처럼 살라 하셨죠.

꽃을 보며 꽃처럼 살라 하셨죠.

 

나는 그 노래를 통해서 아빠라는 발음을 처음 해보았다. 꽃을 보면서 노래 속의 아이는 ‘아빠’를 생각하지만 나는 그 노래를 부를 때만 발음할 수 있는 ‘아빠라는 말’을 떠올릴 뿐이다. (146쪽 中)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 주는 여운으로 참, 기분좋은 떨림을 경험했다.

이 소설이 즐거움으로만 끝났다면 기분좋음으로만 끝났겠지만 두고두고 곱씹어볼 수 있는 대사와 장면들이 많아서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소설을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는 행복한 비명이 될 것이고,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게는 이만한 영광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장담하건데 난 조만간 이 책을 다시 펼칠 것이고, 책 내용에 일희일비하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문학, 소설, 은희경, 새의선물, 진희의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