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는 박민규의 소설을 읽었다.

흡입력이 장난이 아닌지라. 한번에 훑어버린 책..

오랜만에 다시금 책 속의 세계로 나를 쑥 집어삼켜버린 그런 책이었다.

대.단.하.다.박.민.규

 

이 책은 여타의 로맨스소설과는 무척이나 다른 로맨스이다.

분명 사랑하는 두사람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환함이 아니라

어두운 뒷골목에서 남몰래 불법을 저지르는 두 남녀의 행동을 보는 염탐하는 듯한

회색빛 잿빛의 분위기를 시종일관 나타내는 소설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주 잘생긴 미남과.

아주 못생겨서 고개가 돌려질만한 그런 추녀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신기하고 신선했던 이유가 바로 이일터.

한번도 책 속에서 추녀와 미남의 사랑을 읽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세상이 만든 그녀의 소극적태도와 안으로 굽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기질

자신이 사랑받는 것조차 의심을 품어봐야하는 상황.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나 한건지 스스로 되뇌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그런 그녀를 정말로 아끼는 남자의 이야기.

 

이여자는 실제 외형적인 추녀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은 언제나 자기 외모를 걱정하고 외형에 대한 불만을 갖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러한 걱정에 매일같이 다이어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

나 자신에 대한 애정도 크지 못한 상황이 많다고 봤을 때

실제로 어쩌면 적어도 1/4 여성들은 자신을 추녀까지는 아니여도

못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실제로 이 주인공 여자와 나의 생각이 겹치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한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요한이라는 인물 덕이었겠지.

주인공 둘의 사랑을 엮어주는. 그러한 인물로 책 속에 감초같은 존재였다.

켄터키치킨 집의 hope 라는 단어로 인해서 HOPE라는 말이

난생 처음으로 마음에 와닿았고 빛이 실제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냥 어쩐지 어둠만이 있을 것 같은 곳에서 희망의 빛 한줄기가

레이저처럼 쓕 하고 일직선으로 관통하고 있을 것 같은 상상

그리고 BEAR

소설 중간 중간 이러한 요소들이 실소를 자아내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요한과 주인공 남녀 모두 마음 속에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세사람의 모든 행동들이 ......생각해보면 참 따뜻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부분에 그녀가 독일로 가서 즐겁게 생활하는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마지막에 이 책을 쓴 사람이 실제로는 요한이라는 식의 뒷부분 이야기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싫다.그런거.복잡하게..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_*

 

정말.부끄러웠던 적이 있나요?

라고 묻는 여자. 그녀는 항상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살아온 존재이다........

비를 상대하는 게 사람을 상대하는 거보단 쉬워요

 

그녀의 삶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그친구를 좋아하고 싶은거니, 아니면 좋아해주고 싶은거니?

라고 요한이 묻는다.

 

처음에는 주인공 남자조차 이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 작은 어감의 차이가 주는 묘미란.................

 

그녀의 답변이 외야수가 던진 송구처럼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테이블을 넘어왔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볼링장으로, 또 농구장으로 줄어드는 거리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점점 탁구대만큼이나 줄어들었고, 결국 사실적인,,,,,,직육면체의 테이블이 되었다.

이런 비유 정말 좋아.정말 실감나면서도 신선한 표현*_*완전 반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걔는

진심이야.

라고 여자에게 전해주는 요한.

이 한마디는 마치 마음속에 핫팩의 열기가 점점 퍼져나가듯이 몸 전체를 두루 따뜻하게 해주었지.ㅜ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1월 25일이야.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존 레논은 딸기밭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남겼다고 한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녀가 보낸 장문의 편지가 그녀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그려주었다.

박민규라는 작가의 표현력과 전달력은 실로 대단하다는 감탄을 하게되었다.

이상 문학상을 몇번 ?탄 작가라고 들은 것 같은데 다음에 읽게 될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소설을 읽을 때 해피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도 드라마도 실생활과는 다른 해피엔딩만을 틀에 짠듯 찍어내는 게 싫다.

 

그러나 기억에 비추어보건데

문학을 접하면서 해피엔딩이기를 간절이 바라는 노력까지 하면서 읽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같다.

 

좋다. 이 따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