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 책은 우연히 나에게 다가온 책 이였다. 아시는 분이 읽어보라며 주고 간 책이었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고 내 기억속의 피아니시모라고 해서 알츠하이머(책을 읽기 전에는 이 명칭에 대해서는 몰랐다. 하지만 다른 책과 영화를 통해서 기억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것에는 저자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던 것처럼, 옮긴이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던 것처럼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이 불안했다. 그 불안은 책을 읽어가면서 나의 마음에 더 크게 자리 잡아 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앨리스가 겪었던 일들을 보면 나의 어머니가 말했던 일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단기기억에 대한 기억력이 낮으시고 집을 100M정도 가량 남겨두고 두 번씩이나 길을 잃어서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하셨다. 정말 가슴 철렁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저자가 이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두 군데가 있다고 한다. 그 중 한 곳이 이 책의 시작부분인 첫 번째 문단이라고 했다. 그저 문단 전체가 좋다던 그녀. 거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는 시계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유는 내가 느낀 생각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첫 문단을 읽고 맞지 않는 시계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첫 단추를 정말 잘 꿰맸다고 할 수도 있다.

“엄마, 계란이 몇 개나 필요하죠?”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항상 푸딩을 먹던 그녀의 가족인데 앨리스의 기억이 점점 사라져 푸딩의 레시피를 잊어버려서 만들 수 없게 되었을 때 계란이 없어서 못 만들겠다는 핑계를 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녀의 딸이 푸딩을 먹어야겠다며 계란을 사오겠다고 앨리스에게 물어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서 알츠하이머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는 그녀에게 알츠하이머가 맞는다는 확신을 준 문장이 되었다.

이 책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남편인 존의 반응이었다. 나는 존이 수긍하면서 잘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정작 알츠하이머에 걸린 앨리스가 더 담담히 받아드리는 것을 보며 놀랬다. 아마 거기에는 자신의 기억장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었나 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그녀는 시험관 아기에 성공한다면 애나의 아기를 안아보고 싶고, 리디아가 자랑스러워하는 연극 무대에 선 모습도 보고 싶어 하고, 톰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고, 마지막으로 존과 안식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이 지금까지 이뤄왔던 모든 것이 아닌 그저 가족들과 함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즐기길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알츠하이머 때문에 사라져갈 기억 중에 다른 기억이 사라져 가는 부분은 슬퍼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가는 것에는 슬퍼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좋기도 했지만 과연 나도 같은 상황에서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앨리스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가면서 앨리스와 존의 갈등이 심화되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앨리스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기억과 생을 존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이제 가족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존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공간에 앨리스를 제외한 공간의 비중이 너무 컸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그는 놓지 못했다. 너무 마음이 아파왔다.

‘처음엔 그랬다. 둘이 모든 걸 함께 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변했다. 그들은 변화를 받아들였다. 따로 안식년을 보내고, 따로 아이들을 돌보고, 따로 여행하고 오로지 일에 헌신했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산 것이 아니라 나란히 살아왔다.’ - P.245

그들은 같은 곳을 나란히 걸어 왔지만 함께 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인지 앨리스와 존의 갈등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앨리스의 시점으로 책을 서술해 가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의 혼란과 좌절, 공포를 등을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러한 느낌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수 없었다고 하지만 병에 걸려서 좌절하는 모습이나 절규하는 모습이 좀 더 잘 표현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그마한 아쉬움이 남았다.

전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맞춰져 잘 짜여 있었다. 다만 알츠하이머에 걸린 앨리스의 시점에서 쓰인 글이기 가끔 문장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인 사실로 다가왔다. 알츠하이머에 대해 새로운 관점, 병에 걸린 환자의 관점에서 주위를 보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