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그리기는 나에게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쉽게 시작할 수도, 감히 내가 할 수 있다고 꿈도 꿔 보지 못한 분야였다. 어린 시절에 그림그리기라는 놀이를 거의 접해보지 않아서였나 보다. 꼬마시절에 땅바닥에 늘 그리는 형체불명의 낙서나 만화에 나오는 예쁜 여자의 옆얼굴, 그게 다였다. 지금에야 든 생각이지만 그 때 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더 많이 그렸어야 했다. 학창시절에는 늘 미술 시간이 두렵고 안절부절 못하는 시간이었다. 내 맘대로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난 못해, 난 못해...

그래도 남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건 꽤 잘 했었다. 이 책을 보니 따라 그리기가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심지어 모니터에 종이를 대고 그려보란다! 이 어찌 반가운 소리가 아니겠나. 뭐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 그리고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그림 그리는 방법을 설명하는 부분과는 별도로 잡지의 별책부록처럼 연습노트가 따로 있다. 연습노트에는 매우 쉬운 선 긋기부터 조금 테크닉이 필요한 그림에 이르기까지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빈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 한글 연습책처럼 말이다. '자~~ 이렇게 열 번씩 그려보세요~~' 하는 투로. 처음에 좀 따라 해보고 그 뒤론 아직 손을 안대고 있지만 '이것만 다 따라해 보면 나도 그림을 좀 그릴 수 있게 되는 건가?' 하는 기분좋은 상상에 빠져 볼 수도 있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책이다.

 

감상

 

책의 내용은 그 분량이 적다. 하지만 완전 초보들을 위한 기초 상식으로 시작하여 뒤로 가면 사람그리기, 동물그리기, 풍경화그리기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나온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으면서 따라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아이와의 그림그리기 시간을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 그림그리며 놀기의 한가지 방법으로 이런 걸 발견했다. 책에 나온 내용인데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그리며 노는 것이다. 얼마나 신나는 경험이 될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저자 김충원 교수의 다른 책들(평소에는 이름만 알고, 그의 책이 많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을 더 보고 싶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스케치 아프리카> 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저자가 아프리카에 몇개월 머물면서 동물을 스케치한 책이라 한다. 책을 통해 다른 책을 발견한다는 것, 매우 멋진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미술책도 관심을 가지고 봐야겠다.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예술품이 되지만, 그건 그림을 매우 잘 그리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자신의 글을 뒷받침하고 부연설명해 주는 매우 훌륭한 자료가 되지 않겠나. 지금까지 그런 책들을 많이 봐왔다. 예를 들어 모리구치 미츠루의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라는 책에서는 그림이 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그림들은 모두 저자가 직접 그린 것이다!) 양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곤충이나 다른 동물들, 식물들을 설명할 때 그에 합당한 그림이 있으니 감동과 전달력이 몇 배 좋았던 기억이 있다. 만약에 나도 글을 쓰게 된다면(지금도 매일 일기같은 것을 끄적이고 있긴 하지만) 글로는 전달이 부족할 경우 아주 간단한 그림이라도 몇 획이나마 '스스슥'하고 그리면 보는 사람이 '아하!'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를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 책을 매우 칭찬하고 싶다. 그림 그리기와 친해지자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언젠가 나의 작품 하나를 꼭 만들고 싶다.

 

밑줄

 

동물원에 놀러갈 때에도 스케치북 한 권과 함께한다면 그냥 둘러보는 것보다 훨씬 색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p.5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찍이 대기원근법 이론을 발표하여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색감은 청색을 띠며 점점 약해지다가 마침내 하늘과 같은 톤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풍경화에서 참으로 중요한 표현 원칙입니다.(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