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작품이었다. 전쟁에 대한 반대, 즉 반전소설에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도 제공하고 있다.

 

매우 감동을 받은 작품(이런 소설에는 반드시 "작품"이라는 말을 써야만 해!)이건만 막상 서평이란 걸 쓸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미약한 나의 감상을 써내려가야 하나? 채 소화되지도 못한 채로 별 의미 없이 그냥 끄적대는 것에 그칠 것이 뻔한 것이 심히 염려되는 바이다.

 

책을 읽다가 감동 받은 부분에는 얼마전까지 폭이 좁은 포스트잇을 마구 붙여주던 습관이 있었는데, 붙였던 것을 떼다가 책이 훼손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는 A4용지를 네겹으로 접어서 그것을 책갈피로도 쓰고 밑줄긋기 용으로도 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에 꽂힌 A4용지에는 볼펜으로 대략 20여개의 페이지숫자와 간략한 메모내용들이 붙어있다.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에 그 구절들을 어서어서 다 베껴 써야 할 텐데 하며 조바심 치고 있다.

 

일단 책뒷표지의 소개를 보아하니, 블랙코미디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선입견 하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반전소설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대략 분위기를 감잡고 읽기 시작했다. 좀 코믹하게 읽기 시작하는 바람에 속으로 '와~ 약간 웃을 준비를 하면서 읽을 만 하겠군' 하고 씨익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나의 표정, 급기야 공포로 인해 잠을 설칠 것이 두려워 밤에는 읽기를 자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고문도구"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와 그것을 그대로 상상체험하게 만드는 설명때문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다행히 상상의 공포때문에 부들부들 떠는 나를 하루만에 다시 진정시키며 그 다음 단계인 몰입과 흥미진진, 그리고 감탄의 단계에 끌어들였다. 시종 우울하고 절망적인 전쟁터의 모습을 우울하고 절망적인 모습 그대로 그려내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딴데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하곤 했다. 난 원래 전쟁에 관련된 영화나 책은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이다. "우울한 건 정말 싫어!" 다. 하지만, 이번에 반강제로 읽다시피 한 것이, 나에겐 행운이었는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꿀맛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데도 보석이 있었을 줄은 단연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 작품을 추천해 주신 분께 대단히 감사드린다.

 

작품에서 말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크게 반전,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이다. 반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제대로 말할 재주도 없거니와) 누구나 짐작되는 바가 있을 터이고, 후자에 대해 내가 이 책에서 받아들인 것을 말하고자 한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 늘 궁금하던 차에 그에 대한 설득력있는 견해를 여기서 발견하고 기뻤다. 죽은 후에도 시간 여행을 통해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수시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먹은 바로 그 시간으로 갈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서, 죽은 후에도 다시 살아 있는 나로 돌아갈 수 있고, 따라서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하게 비통한 경험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가? 만나고 싶은 순간에 만날 수 없다 뿐이지 죽은 사람도 늘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 그런 일로 슬퍼하게 될 경우가 생기면 늘 이 책을 떠올려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