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톰라이트에게 배우다 (Tom Wright for Everyone)

스티븐 커드(최현만 역)/에클레시아북스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 일반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할 때, 나는 ‘화음회’라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가입을 하려고 했다. 동아리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동아리 회장이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했고, 나는 이미 통기타를 10년 넘게 친 사람이라서 ‘통기타와 클래식 기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회장은 한번 씨익 웃더니, 대답대신 10분간 클래식 기타로 한 곡을 연주해 주었다. 나는 그 작은 공간에 울려 퍼졌던 클래식 기타의 그 매력적인 소리와 테크닉에 푹 빠지고 말았고 1년간 열혈회원으로 참가했다. 1년 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신학교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상당한 수준의 클래식 기타 전공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긴 공부가 시작되었다. 10년이 넘는 학업과 졸업 후 목회의 현장에서 홀로 성경책, 신학책과 주석책들을 연구하며 다시 10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내 목회와 신학의 여정 속에서 20년전 클래식 기타의 첫 선율보다 더 감동적인 한 사람을 만났으니 그 사람이 바로 톰 라이트Tom Wright이다. 가끔 나의 블러그에 오는 사람이나 내 서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장로교쪽 개혁신학이나 성결교단의 웨슬리 신학이면 충분할 텐데, 왜 몇몇 사람들이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톰 라이트의 글을 그렇게 열심히 읽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자상한 설명을 해 주기고 하고 나의 고백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내가 말을 잘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렇다면 톰 라이트에 대해 읽어볼 책을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리스챤다이제스트에 현재 3권까지 출간된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를 추천하지만 일단 그 분량의 방대함과 학문적 깊이로 인해 선뜻 손이 가질 않고 정작 머리를 싸매며 읽어 봐도 대다수 성경신학적 깊이의 부재나 기존 교리적 틀의 석화도가 너무 높아서 그 내용을 충분히 따라올 수가 없다. 단권들도 있지만 이 책들도 전체적인 그림이 나와 있지 않아서 아쉽다. 이렇게 톰 라이트에 대한 피상적 이해는 목회자나 학자층에서도 여전하여 작년에도 평신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신학자 파이퍼 목사가 라이트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칭의 논쟁:부흥과 개혁사>을 읽고 정말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정말 라이트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글을 썼구나 하고 생각될 뿐이었다. 그런데 스티븐 커드 목사가 이번에 큰 일을 해 냈다. 라이트의 입문서를 써 낸 것이다. 원래 책 이름은 라이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의 이름을 따라 Tom Wright for Everyone이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모든 사람을 위한 톰 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총 7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1장에서는 라이트의 인생과 학업적 역사를 다루는 간략한 인간적 이해를 다루고, 2장에서는 왜 지금 라이트가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현 시대의 신학적이고 목회적이며 신앙적인 어려움과 모순들을 던진다. 그리고 3장은 아마 학문적인 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보이는데, 톰 라이트의 신학을 매우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이어지는 4장부터 6장까지는 라이트의 신학이 단순히 상아탑에 갇힌 학문적 정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회의 현장과 선교의 방향성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 얼마나 깊은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7장은 톰 라이트의 신학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안전하다고 생각해 왔던 신학과 성경읽기 그리고 피상적인 삶의 여러 영역에서 도전을 함으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 라이트가 쓴 책을 20여권 읽었고 최근에도 라이트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수시로 읽어 보지만 이렇게 라이트에 대해서 균형잡힌 정리가 잘 된 책은 처음이다. 대다수 한국 논문들은 칭의론 문제에서 어느 정도 다루다가 말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균형을 잃어버려서 심각한 비판서적이나 무조건적인 긍정적 입장만을 고수하기 쉬운데 이 책은 라이트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그의 신학이 성경과 목회, 앎과 삶이라는 모든 영역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그런 과정속에서 우리는 라이트가 가진 단점이나 부족한 점도 여과없이 반영되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새로운 신학이나 운동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 태도를 유지하기 보다, 분별력을 가지고 귀한 것들은 내 것으로 삼는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이 책이 단순히 라이트를 요약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라이트의 신학과 방향을 목회의 현장 속에 직접 적용했을 때 일어나는 변화와 능력을 저자의 목회 현장속에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쓴 저자처럼 라이트를 통해 성경을 읽는 방식이 새로워졌다. 1세기 유대인의 시각에서 본문을 이해할 뿐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의 전 영역에 이르는 균형잡힌 이해도 가지게 되었다. 분열되고 교리화 되기만 하는 복음을 생명력 넘치는 인격으로 마주하고 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의 조화와 협력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이 더 현실적이고 목회적이며 실천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담대히 고백하고 싶다. 물론 나는 라이트를 우상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하는 성경해석의 모든 구절을 다 동의하지도 않고 있으며 칭의가 가진 사회학적, 교회론적 개념의 한정보다 구원론적 개념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다만 어차피 모든 신학자나 교단의 교리가 완전하지 않다면 우리는 모든 신학적 흐름과 입장에 열린 태도를 가지고 들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라이트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신학자이자 목회자 중에서 가장 균형잡힌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국의 신학과 목회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해석과 신학적 틀은 사실 이미 무엇인가 거의 완성되어 보이는 형태를 지켜보려는 태도가 만연하다. 그래서 무엇인가 의심이 되고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아도 “지금 상태가 큰 문제 없다”는 안전감을 누려보기를 더 궁구하는 듯하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말하고 부분적으로 깨닫고 있을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라이트의 그것 역시 동일하게 부분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적인 영역을 그가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제 교회들은 21세기의 문제에 1세기의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16세기의 질문에 19세기의 대답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헤매고 있다. 하지만 라이트는 창조와 새창조의 가치에 대해서, 1세기 유대인들이 이해했던 성경의 표현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서 종교개혁자들의 원 의도를 다시 다듬어 21세기를 사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살아내야 할 가치를 일관성 있고 전 영역을 아우르는 힘으로 도전한다. 그리고 그가 깨달아 정리한 모든 말씀과 신학적 가치들은 목회의 현장으로 선교적 방향으로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는 목적으로 포기없이 진행되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알아왔고 사용해 왔지만 잘못된 표현이나 지식이 있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살고 누려왔지만 실제로는 비정상적인 모습이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깨달아지듯이 라이트는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과 성경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바울과 요한과 베드로를 존경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음이 더 선명하고 실제적으로 알아지고 살아지기를 충심으로 기대하기에 톰 라이트에게 감사한다. 아울러 라이트의 신학을 정립하고 목회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스티븐 커트 목사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좋은 책을 내고자 수고하는 번역자 최현만 집사와 편집자 강창섭 집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에클레시아 북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톰 라이트를 소개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톰 라이트와 같이 신학하고 목회하는 제 2의 톰 라이트, 제 2의 바울, 제 2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어디선가 화음회 동아리실에서 처음 들었던 그 기타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