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이 초주의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이려 할 때,

"이런 썩어빠진 선비놈아!!"

라고 외치면서 병풍 뒤에서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유선의 다섯째 아들 유심입니다. 

유선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유심이 할아버지 현덕의 총기를 쪽 빨아먹었는지 유심만 영민하고 나머지 여섯은 착하기만 할 뿐 나약했다는군요. 

유심이 덮어놓고 투항을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검각성에 버티고 있는 강유의 군사와 외응하여 성도의 안팎에서 등애군을 협공하면 승산이 있다는 그럴 듯한 대안도 제안했었죠.

그리고 초주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저 자의 제안은 선대부터 받아들여진 적이 없지 않습니까!!"

라고도 합니다.

그 말이 제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수가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옳은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의견이 매번 퇴짜를 맞기만 한 초주는 실은 건전한 비판자를 가장한 것에 불과한 무능한 관료였던 것은 아닐까요? 나관중이 공연히 초주를 미화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초주가 반대했던 동벌(현덕이 동오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일)도 북벌도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니 꼭 그렇게 보기만은 어렵겠습니다.

그럼에도, 서촉의 항복문서 작성자로 낙점된 사람이 초주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천문에 통달하고 인사에도 꽤 안목이 있었던 서촉의 인재 초주가 오히려 망국에 앞장서다니요. 하지만 이로써 유선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주군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구차하더라도 살아남으라고 할 것인가.

전자가 꼭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특히나 명예로운 죽음을 택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선이 주군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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