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타일과 마케팅, 그 사이에서 탄생하는 뉴욕의 크리에이티브 산업

 

1월의 어느 오후였다. 나는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신시아 롤리를 그녀의 웨스트 빌리지 부티크에서 만났다. 톡톡 튀는 성격의 그녀는 특이한 프린트와 맞춤식 보헤미안 스타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보였다. 우아하면서도 전혀 오만하지 않은 신시아와 함께 나는 그녀의 일에 대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미술과 음악이 자신의 일과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관계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영감을 얻는 차원에서뿐 아니라, 그녀의 옷을 평가받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패션 잡지가 커리어의 승패를 좌우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린제이 로한이 어떤 드레스를 입느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신시아의 패션쇼에 스칼렛 요한슨이 모델로 섰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힐러리 스웽크가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막판에 드레스를 바꿔 입은 일 역시 이러한 현상과 관련이 깊다. 애초에 캘빈 클라인 드레스를 골랐던 힐러리 스웽크는 결국 등이 깊게 파인 짙은 남색의 기라 로쉬 드레스를 선택했다.

캘빈 클라인의 프랜시스코 코스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할리우드 역사상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어떤 의상을 입을지 미리 얘기하는 여배우는 없다. 시상식을 2주 앞둔 상태에서 내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피팅하던 때였다. 드레스를 입은 힐러리는 나를 돌아보면서 등이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것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드레스의 등이 파여 있기는 했지만, 심한 정도로 파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힐러리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힐러리는 이미 다른 드레스를 입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결국 그녀는 다른 옷을 입어보겠다는 말을 했다. 우리와의 만족스럽지 않은 계약 조건으로 기분이 언짢았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계약한 지 1년이 다 지나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마음에도 없는 계약을 도대체 왜 한 것인가? 힐러리는 분명 사랑스러운 여배우지만, 그런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 내 드레스를 탐내는 이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녀도 알 필요가 있다. 막판에 드레스를 바꿔 입은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게이트키퍼와 트렌드세터의 관계가 겹치는 교차로에는 ‘동료 평가(peer review)’라고 불리는 현상이 존재한다. 동료 평가라는 개념은 문화 제품의 평가자들이 음악이나 미술 비평 같은 특정 업계에 반드시 존재할 필요는 없으며, 그보다는 광범위한 크리에이티브 영역 속에서 활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의 트렌드세터가 동시에 다른 업계의 트렌드세터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업계의 문화 생산자들은 다른 업계의 평가자가 될 수 있다. 케이트 모스가 모델인 동시에, 패션 비평가로도 활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동료 평가자’들은 각 사교 분야에서 활동하는 트렌드세터나 쿨한 일반인들 사이에 퍼지는 입소문의 개념과는 달리,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상층부에 존재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그들은 다른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인물이나 제품에 경제적 가치를 매기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들은 정당한 문화·예술 생산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함으로써 다른 영역을 넘나들며 크리에이티브 생산의 가치를 마음대로 지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