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뒷골목 디제이가 ‘예술계의 아이콘’이 되는 도시

  1977년, 뉴욕 지하도에 세이모(SAMO)라는 그래피티 그룹이 떴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Same Old Shit)’이란 뜻의 세이모는 그래피티의 인기가 절정에 다다른 그 시절, 언더그라운드를 평정한 신화적 존재였다. 뉴욕의 젊은이들은 마치 자유를 부르짖는 게릴라들처럼 깊은 밤이면 지하철 터널 속을 내달렸고, 경찰의 눈을 피해 지하철 외관에 현란한 그림과 사인을 그려 넣었다. 이튿날 아침이면, 온통 그래피티로 도배된 지하철들이 도심을 질주했다.

세이모의 멤버였던 장 미셸 바스키아는 이스트 빌리지의 한 다운타운 클럽에서 디제이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일개 뒷골목 반항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는 1981년,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 <아트 포럼>에 ‘미술계의 기린아’로 소개되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바스키아는 줄리앙 슈나벨, 데이비드 살르,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키스 해링과 같은 유명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뉴욕 미술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는 당시 무명이었던 팝 가수 마돈나와 데이트를 즐겼고,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신화 앤디 워홀과 공동 작업을 했으며, 스타 작가를 발굴하기로 유명한 메리 분에게 발탁됐고, <뉴욕 타임스> 표지를 장식했다.

승승장구하던 바스키아는 1988년,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과 신표현주의의 중심을 이루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엄청난 액수를 호가하고 있다. 무명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에서 출발한 그는 이스트 빌리지의 예술가로 명성을 얻었고, 메리 분과 앤디 워홀을 만나 뉴욕 사교계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짧지만 강렬했던 바스키아의 일생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세계 크리에이티브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를 설명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뉴욕’이기에 그런 일들이 가능했고, ‘뉴욕’이기에 크리에이티브를 향한 들끓는 열정을 쏟아내며 아티스트들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스키아의 삶은 ‘크리에이티브의 신화’를 증명한다.

패션과 미술, 음악과 같은 분야로 구성되는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매력적인 영역임에 분명하다.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성공의 기준은 모호하고 때로 일시적이다. 마치 밤을 밝히는 불빛이 끊임없이 불나방들을 모여들게 하듯이,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셀러브리티와 트렌드세터들을 끌어 모으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내보내며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많은 사람들이 ‘매혹적이고 섹시하며 쿨하다’고 말하는 그것! 그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바로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가치다. 물론 그런 가치를 창조해내는 데 특별한 공식이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노하우를 개발하기도, 성공을 예측하기도 힘들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나 명품 구두 마놀로 블라닉의 아찔한 최신 스틸레토힐을 두고 ‘미적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점수를 매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그룹 너바나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과 도서관 사서의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셔츠 하나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누가 그 정확한 이유를 콕 집어낼 수 있을까?

뉴욕에서 마크 제이콥스라는 인물은 ‘뛰어난 크리에이터’이기도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의 상품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아우라에 열광한다. 심지어 그를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그에 대해 논평한 글을 읽거나, 잡지와 칼럼에 소개되는 그의 일상을 모방한다. 이러한 현상은 퀸시 존스에서부터 제이 지,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 더 넓게는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는 이른바 ‘문화 생산자’들에게 전반적으로 적용된다.

비록 예측 불가능한 프로세스에 의해 음반이 히트하고 패션이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여기서 드러나는 뚜렷한 양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며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창의적 발상이 바로 이곳 ‘뉴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