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첫 번째 방문지 런던, 우연히 그 날은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하는 행사가 포츠머스 해안에서 열리고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형 멀티비전으로 전 세계 군함이 참가하는 관함식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트라팔가 광장에 높이 솟은 기념비 위에는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자리 하고 있다. 며칠 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를 방문했다. 에딘버러 중심, 시청사 앞에는 워털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웰링턴 공작이 말에 올라탄 웅장한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이 두 영웅의 공통점은 바로 나폴레옹 군대를 이겼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 대륙을 사실상 지배하던 나폴레옹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영국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웅을 존경하게 만들었다. 영국인들이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른 자신들의 영웅들에 자부심을 갖는 것 만큼이나, 프랑스인들도 나폴레옹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영국을 떠나 다음 방문지 파리에 도착했다. 우연히 계획에도 없이 파리 시내를 헤매이다 발견한 엥발리드. 전혀 사전 지식없이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그 곳은 나폴레옹의 무덤이 보관되어 있었다. 에펠탑에 올라가서도 엥발리드의 황금돔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다. 루브르 박물관 3층에 마련된 대형 벽화들. 대부분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인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침공하는 그림 등 온통 나폴레옹에 관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박물관을 나서서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면 나타나는 개선문. 개선문 역시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승전문이다. 개선문 안으로 올라가면 꼭대기층에 역시 나폴레옹에 관한 기록과 자료, 유물 등을 보관하고 있다. 작은 나폴레옹 박물관 같다. 나폴레옹 사후 180여 년이 흘렀지만, 파리는 여전히 나폴레옹의 치적으로 덮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의 프랑스가 있게 한 장본인, 나폴레옹. 사람들은 프랑스하면 자유, 평등, 박애 등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먼저 떠올리지만,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나 현재의 프랑스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러한 가치가 무색할 정도로 프랑스는 존경할 만한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물론 프랑스가 산업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며, 제도적이면에서 형평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제국주의 열강, 식민지 팽창주의를 생각할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국가들은 바로 영국과 프랑스이다. 이 두 국가는 다른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전 세계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하고 식민지인들을 침략, 수탈한다. 하지만, 혁명 이전의 프랑스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대륙의 선진국이 아니었다. 영국은 이미 대외 팽창에 성공하고 산업혁명으로 유럽 최대의 부국으로 발돋음하고, 네덜란드도 동아시아에 식민지 건설과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화도 해외 진출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고, 초기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이루었지만, 계급간 갈등으로 매우 불안한 정세였다. 

그러나 곧 혁명이 나은 거의 무정부상태의 혼란은, 무명의 장교인 나폴레옹이 전쟁 영웅으로 부각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변변한 식민지도 없고 산업화도 늦은 프랑스는 계속되는 혁명과 외침, 공포정치, 잦은 정권 교체등으로 정국마저 불안한 사실상 유럽 대륙의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말로만 이뤄지던 혁명의 가치들이 실현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 시민법으로 프랑스인들의 민권은 향상되었고, 부르주아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신용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도 마련되었다. 이는 곧 경제적 자유로 이어져, 시민들이 더 이상 소작농으로 대영주와 성직자들의 봉건적 지배를 받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폴레옹의 국민 교육으로 평민들에게 교육의 기회 평등이 보장되었다. 에콜 폴리테크닉과 같은 그랑제콜등이 새로운 과학 기술 엘리트를 양성하면서, 귀족같은 특권계층이 아니더라도 지위와 출신에 관계없이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러한 제도 개혁은 프랑스를 귀족과 성직자의 봉건 지배에서, 시민 출신의 행정 관료 지배체제로 급속히 이전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 시민 사회 육성에 이바지 하였다. 즉, 나폴레옹의 지배는 프랑스를 근대국가로 한 걸음 더 빨리 나아가게 하였다. 

또한 나폴레옹의 팽창 정책으로 대륙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쌓아올린 공적은 전 유럽으로 급속히 파급되었다. 대륙 내부는 여전히 봉건주의가 뿌리 깊었고, 수 많은 왕국과 봉건 토후국들로 나누어져 있었으면, 영국과 프랑스등의 선진적 혁명 사상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정부의 제도와 문물인 민권 사상, 근대 교육과 군대, 경제 상법 등이 유럽 곳곳에 통용되면서, 유럽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나폴레옹 침략에 항거하는 민족주의, 통일 운동 뿐만 아니라, 민권 의식, 교육과 군사 개혁,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여 근대국가를 도모하려는 사상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유럽대륙을 휩쓸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와 유럽 대륙은 내부적으로는 나폴레옹식 근대국가를 이루기 위해 국민 교육을 강화하고, 민법과 상법을 통해 민권과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하고, 상업과 무역을 장려하여 산업화를 독려하고, 외부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다. 어찌보면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대륙의 자본주의, 산업화 후진국들을 선진국 반열로 끌어올리도록한 자극제이자 촉진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위 이야기들은 필자가 이 책 ’나폴레옹의 영광’을 읽고 나름 도출한 결론이다. 저자가 군사학자인만큼 방대한 사료와 연구자료를 근거로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매우 세세한 도표와 지도로 유명 전투의 시간대별 군대 이동과 진퇴를 기록하고 있고, 훌륭한 회화와 유물 사진들로 시각적인 학습 효과도 증진시키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 유럽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은 독자 여러분을 바로 살아있는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