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하면 만화나 애니메이션 강국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추리소설도 대중화되어 많은 작가들을 통해 선보여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실은, 일본에서 14년간의 긴 시간을 생활한 적이 있어 일본이 얼마나 많은 추리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익히 알고 있었고, 많은 작품들은 드라마로 제작되어 TV를 통해 거의 한주에 재방송을 포함해서 4-5편 정도는 족히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짧게는 미스테리 극장으로 한편씩, 길게는 11편 정도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하지요. 대부분, 피가 낭자한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어, 한편에 서너명씩은 죽어나가는, 그리고 범인은 가까이에 있다는 뻔한 스토리에, 다소 선정적이고 에로틱하기까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도 그런 부류가 아닌가 적잖이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추리소설을 한국어판으로 읽을 수 있어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추리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인데, 오랜만에 일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요코야마 요이치'씨의 작품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어 기대가 되더군요.

그런데, 제가 읽은 '그늘의 계절'은 지금까지 봐오고 알고 있었던 추리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보통 TV에서 드라마화되어 방영되는 추리소설의 경우는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 미스테리 극장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소설은 경찰이라는 조직 내 경쟁과 갈등을 다룬 소설이더군요. 게다가 구성도 참 특이합니다. 이 한권의 책에는, 총 네가지 작은 제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짤막한 스토리로 끝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 보면 한 이야기의 인물들의 조직내 수직관계가 얽히고 모두 관계가 있는 이야기로 되어 있어요.

첫 <그늘의 계절>에서는 인사계 담당인 '후타와타리'가 '오사카베'라는 인물의 인사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도 공감이 가는, 일본 조직사회의 분위기가 느껴져서 읽으면서 추억에 잠겼었어요. 저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그것도 시청과 관련된 협회 소속 직원이어서, '오사카베'처럼 퇴직을 하고 2년 정도의 임기로 소장이 와 있었거든요. '오사카베'처럼 임기가 되었는데도 그만둔게 아니라, 좀 다르긴 하지만, 경찰내의 조직에 관해 이 책을 통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오사카베'를 그만두게 할까 고민하는 '후타와타리'. '오사카베'가 딸의 강간범을 찾으려고 임기가 끝났는데도 남아있으려고 하는 부분이나, 마지막의 반전이 재미있더군요.

두번째 <땅의 소리>에서는 인사철을 앞두고 감찰관 '신도'가 Q서 생활안전과장 '소네 가즈오'가 PUB 무무의 마담과 깊은 관계라는  한통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문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찰관 내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알고보니 자작극이었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후타와타리'의 눈을 피해갈 수 없어 승진을 놓치고 마는 '신도'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번째 <검은 선>에서는 여경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경 담당 계장 나나오 도모코는, 얼마전 범인의 몽타쥬를 자세히 그려서 공을 세운, 행방불명이 된 '미즈호'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납치라고 생각하고 찾아나선 토모코는 뜻밖의 일을 알게 되지요. 알고보니, 몽타쥬는 과장의 강압에 의한 것이 밝혀지는데, 이 역시, 예리한 '후타와타리' 조사관의 눈을 피해갈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가방>에서는, 경무부 비서과 과장보좌인  '쓰게'가 의원들의 질문들을 미리 알아내서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하고 하는 과정에서 '우가이'의원과의 실랑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알아내려고 해도 좀처럼 경찰에 대한 것이라며 폭탄발언을 하겠다고만 하고, 입을 열지 않는 우가이의원. 승진이냐 목이냐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애가 타는데요. 결국엔, 함정에 빠져 우가이의원을 찾아간 쓰게는 의원의 가방에서 서류들을 훔쳐보게 되는데, 별다른 폭탄발언의 빌미가 될 서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의회도 폭탄발언 없이, 아무일없이 지나가지요. 그런데, 그 함정 가운데 빠진, '쓰게'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가방이 도난신고가 되었다는 결말. 참 씁쓸하더군요.

조직내의 치밀함과 또 한편으로는 비열함까지 전해져오는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간만에 머리를 굴리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전체적으로 구성을 볼때, 참 독특한 구성에 잘 짜여진 스토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번역상 좀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 같아 아쉽네요. 물론,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일이 참 쉽지는 않겠지요. 일본어의 표기법과, 직책이라던가, 어감상 다른 부분들도 있고 말이지요. 일본어 표기법은 그냥 지나치더라도, 조금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더군요.

첫번째 이야기의 p53의 두 '치비'라고 써 있는데, 이걸 왜 한국어 '꼬마'라고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미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지요.

그리고, p175페이지의 '블도그'는 불독을 말하는건지? 아리송하더군요.

번역만 매끄럽다면 별다섯개를 주고 싶은 그늘의 계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