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러 그루언의 미국도서관협회상 수상작인 [워터 포 엘리펀트]는 양로원에서 무기력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젊은 시절 미국의 대공항 시기와 맞물려 한창 서커스가 전성기를 갈구하던 1920년대와 30년대를 보낸 제이콥 얀콥스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기억속의 서커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공항 시기의 서커스라는 특별한 소재를 다룬 작품인만큼, 새러 그루언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역사속 서커스단을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특유의 섬세함을 담아내어 무척이나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있다. 소설을 이야기하는 화자이자 이야기속의 주인공인 제이콥 얀콥스키는 수의학을 전공하던 20대의 순진한 청년인데 예기치 못한 상황때문에 서커스단 기차에 오르게된다.

 

그곳에서 제이콥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벤지니 형제 지상 최대의 서커스단'과 만나게되고, 거대한 뚱녀 루신다와 풍만한 몸매와 미모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바바라, 겉으론 차가워도 마음은 따뜻한 난장이 월터와 그의 애견 퀴니, 동물쇼 총감독인 두얼굴의 오거스트, 그리고 서커스의 폭군 단장 엉클 앨, 마지막으로 제이콥이 첫눈에 반해버린 아름다운 곡예사 말레나와 말썽꾸러기 코끼리 로지를 만난다.

 

노인 제이콥에게 잊을수없는 과거의 기억들, 벤지니 형제 지상 최대의 서커스단. 제이콥과 말레나, 그리고 오거스트와 코끼리 로지까지. 모든것이 아슬아슬한 사각의 곡예를 스릴있게 펼쳐내는 지상 최대 서커스의 이 믿을수없는 이야기들은 작가 새러 그루언의 탁월한 글솜씨와 묘사 덕분에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서커스에 대한 역사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수집한 새러 그루언의 노고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말미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서커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아끼고 좋아하는 소설인 [워터 포 엘리펀트]는 이제는 사라진 역사의 한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하고있다. 노인이 간직한 아련하고 소중한 과거를 서커스라는 흥미롭고 스펙타클한 쇼와 함께, 아름답고 장엄한 코끼리라는 존재의 인간을 닮은 깊은 눈을 통해서 보여주고있다. 서커스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코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마치 천국같은 황홀한 시간들을 선사해 줄 것이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도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