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이야긴 이제, 별로 불편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른바 참살이 물결이 일렁이고 몸에 좋은 먹거리가 유통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마트에서 실감한다. 몇 백원 더 내고 무농약 콩나물을 고를 수 있고, 두부에는 어느새 천연 응고제와 국산콩 바람이 함께 불었고, 무 항생제 달걀 세력이 점점 넓어지고, 12분도까지 벗겨주는 도정기계 앞에서 5분도나 3분도 쌀을 주문할 수 있고, 우리밀을 빻은 누런 통밀가루도 쉽게 눈에 띈다. 선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여전히 이 책이 불편하다면 그건 진술에 있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새로울 건 없었다. 전부 옳은 말이지만 틀에 박힌 논조였다. 채식을 결정하고 읽어왔던 수많은 건강서적들의 내용이 되풀이되는 낡은 신간. 제아무리 유익하다 한들 동어반복적인 '밥상' 책들, 이젠 좀 지루하단 생각이 든다. 오염의 시대, 불안의 시대만을 거론하며 현실의 작은 변화들을 감지하진 못했다. 퓨전과 서구식 식생활에 길들여졌다고 통탄하는, 배곯았던 시절의 거친 음식을 찬미하는, 그 다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건강하게 만든 과자와, 첨가물을 뺀 가공 식품, 통밀 식빵, 저농약 농산물, 그 다음의 대안이 궁금하다.          


그나마 신선한 이야기는 얌전한 장류와 장터에서 사라진 나물 뿐이었다. 나머지는 채식의 필요성, 육식의 위험성, 도정된 곡물의 비효율성, 슬로우 푸드의 중요성, 서양식 식생활 경고, 고단백과 고칼슘의 환상, 설탕과 지방의 함수관계 등등 이루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종류의 건강서들이 내놓았던 증명 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봤던 <몸살림 먹을거리>의 경우는 위해식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먹거리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모색한 책으로 활용도가 높았다. 어묵은 뜨거운 물에 담가 먹고, 껍질을 까놓은 연근은 구입하지 않고, 100% 과실쥬스의 허상을 밝히는 등의 현실에 꼭 맞는 처방을 내놓았다. 그 이전에 <목숨걸고 편식하다>는 경험담을 토대로 의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면서 채식과 소식, 곡물식의 실천을 돕는 특제 레시피를 공개한다. 모두 설교를 뒤로하고 실증을 앞세웠다. 

그에 반한다면 온통 독자적인(창의성은 없는) 진술로만 범벅된 이 <내 몸이 원하는 밥상>은, 건강 서적을 막 접하는 신생독자들에게만 가능성을 줄 것이다. 개괄적인 먹거리 이야기로서 대단한 부족함은 없으니. 다만 한가지 고개를 갸우뚱 할만한 구절이 눈에 띄었는데, 좀처럼 객관적인 자료를 내놓지 않는 저자에게 따져묻고 싶은 부분이다.               


말하자면 '밥은 영양가가 없으니 고기도 먹고 반찬도 먹고 우유도 마셔야 한다'는 데에 대한 반론 같은 것인데, 밥상머리에서 아이에게 밥에는 영양가가 없다고 말하면 '그런 밥을 먹고 사는 너는 부족한 존재'라는 생각을 각인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굉장한 상상력 아니면 지나친 비약이다. 게다가 부족한 아이들이 비행이든 폭력이든 자신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결핍증을 해소한다니!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백설탕 같은 단순당이 혈류를 급격히 상승시켜 아이들의 정서를 불안하게 하고 집중력을 잃게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한의사 손영기의 책에서 읽었 결핍이 아이들의 생명력을 위협한다는 논리는 아무리 곱씹어도 속뜻을 찾아내기란 무리였다.

인색하나마 칭찬할 거리는 거추장스런 띠지 낭비 대신 책의 밑 단에 그린 띠지그림 표지였다.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