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법을 공부하는 세상. 독학이나 자기만의 성취로 쌓은 공부의 탑을 추앙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은행의 금리에 월급을 맞기고 착실히 돈을 불려 집을 사던 저축시대가 제테크의 비법서들에 맥없이 물러난 것처럼, 공부에도 테크닉의 시대는 왔다. 이미 많은 공부법 책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EBS에서 방영되고 학습만화로 출시된 <공부의 왕도>, 사교육 없는 알뜰한 공부법을 내세운<엄마가 1등 선생님>, 간단한 영어문장으로 된 그림책만으로 아이를 원어민 수준 영어로 끌어올린 <가을맘의 그림책 몰입영어>, 유아 조기교육부터, 초등학생, 대학 입시에 할 것 없이 공부 비법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시절은 갔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행복'의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 숫자는 점수, 등수, 대학 합격 가능성(<공부의 신>에선 편차치로 표현된다)을 모두 장악했고 우리는 숫자에게 엄정하고 차갑고, 비인간적이란 오물을 씌웠다. 물론 숫자를 제대로 통과한 적이 없던 사람에게 특히. 

입시일면도에서 벗어난 좀 더 따뜻하고, 고차원적이고, 창의적인 학교 혹은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 방식의 교육이든 입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관문일 뿐. 그렇다면 새 시대의 아이들에게 이런 슬로건은 어떨까. '행복하게 공부하기'

<공부의 신>이 말하는 '공부법'은 '교육법'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책에 나오는 테크닉을 완벽히 익힌다고해도, 그런 테크닉을 구사하는 교육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불완전하다. <공부의 신>은 실용서와 실현 불가능 환타지 사이를 오가면서, 진짜 공부 이야기와 가짜 교육 이야기를 섞었다.

파격적이거나 선례를 깨는 교육에 대한 새로운 지침들을 세운 변호사겸, 도쿄대학 진학 특별반 두 아이의 매니저 사쿠라기. 그가 내뱉은 말들이 이 책의 핵심이다. 중졸의 학력에 폭주족 출신,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한 이 괴짜의 언변은 가히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독설뿐이다. 현실성 제로. 도대체 이런 판타지 속에서 무슨 진지한 조언을 구할수 있으랴, 했지만 힌트는 충분했다.

무책임을 권리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진 유행을 개성이라고 믿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공공장소에서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고 믿기때문에, 정치가와 관료와 대기업과 매스컴에 휘둘려 그들이 편리한 대로 떠맡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가는, 말 잘듣기 짝이 없는 일반 대중 예비군.

3류 학교 류진의 아이들을 처음만난 사쿠라기의 평이다. 적어도 인간미 넘치는 평범한 학원물은 아니겠단 확실한 지점에서, tv로 조금 맛 본 공부의 비법들에 조급증이 나기 시작한다. 꽤 거창하게 정곡을 찌를거란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공부의 神>이 공개하는 공부 비법----------------------------------------

고전문학 공략 1단계, 만화로 시작하라. 

            <엄마가 1등 선생님>에서도 공개되고 있는, 지루하고 어려운 과목은 학습만화로 긴장을 풀라는 조언이다. 

주입식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다,를 외치는 수학 특별교사. 등장.

수학; 응용문제가 어렵다면 공식을 통해 문제를 직접 만들어 본다. (문제 원리 파악)
문제해답 동시 프린트로 문제 폭포수를 맞아라.

암기는 자기직전에 하라, 단기기억은 깨어있는 동안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점점 장기기억으로 바뀌기 때문.

쓰면서 생각하라, 사쿠라기.

형광펜으로 요점을 칠해봐야 요점을 기억할 수 없다. 대신, 노트를 더럽히고 교과서를 깨끗히 하라.

논술 비법도 등장. 일부 문장 테크닉을 옮겨 적어본다.

문장을 짧게 쓰고 수식어를 절제하며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확실히 한다.
대명사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왜냐면, 그러나 같은 접속사를 이용해 앞뒤 문장의 관계를 명확히 한다.

영어; 몽타주 암기법, 접사와 어근의 이해로 단어를 상상하라.
영어로 일기를 쓰라, 그날 외운 단어를 이용해.
영어 단어와 숙어는 문장속에서 문법과 함께 암기하라. 
따라 읽기로 듣기와 독해력을 함께 공략한다.
영영사전 게임.
 
국어;감동의 메뉴얼화에서 벗어나 분노, 미움, 배신, 콤플렉스를 담은 양질의 독이 포함된 작품으로 흥미를 돋우어라.
문장만 읽기에서 바르게 읽기, 추측해 읽기로 나아가기. 

시험을 위한 컨디션 조절.(몇 가지만)

절대 밤을 세우지 마라/자기전까지 공부를 계속하라/당일 아침엔 교과서를 읽지 마라

세계사 암기법; 연합과 치밀화, 메모리 트리만들기, 그림과 상징을 사용해 좌우의 뇌를 한꺼번에 이용하라.
세계사는 거슬러 올라가며 공부하라.

              <공부의 왕도>에도 등장하던 암기법이다.

사쿠라기식 마킹 공부법
방학 계획표는 장기적으로 세우지말고 매일의 할당량을 정해 공부하라.
영어 단어500개 숙어300개 등으로 구체적 목표 세우기

류진의 교사들을 위한 코칭법
단순한 부추김으로 칭찬하지 말고 상대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는 칭찬법을 익혀라.
칭찬 테크닉.(일부);구체적으로, 바로, 두고두고, 이유를 붙여, 다양한 말로, 칭찬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전하라.

교육의 기준은 오로지 학력 향상이다.

----------------------------------------------------------------------------------------------------------

되도록 꼼꼼하게 천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속에서 물고기를 잡듯 테크닉들을 건져올린 이유는, 공감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입시전략으로 구사되고 있는 위의 방법들이 어떤 공부든 간에 쓸모가 있을거라고 짐작된다. 그건 책이 지향하는 지점과도 일치한다. 학력과 대학이라는 노골적인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긴 했지만, 즐겁게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두 주인공이 색다른 교육법으로 누린 감정들은 '성적 향상' 말고도 '인성 도약'을 꿈꾸게 한다.
 
국어는 지루하고 메뉴얼화된 교훈 전달과목으로부터 벗어났고, 온통 암기할 것 투성이에 좀처럼 몸에 와닿지 않았던 역사과목은 인간의 감정이 벌인 일대의 사건일지로 변모한다. 문법과 해석으로 점철되던 영어가 단어조합의 원리나 운율로 독해와 암기를 공략하고 그림, 글씨를 동원해 암기의 전략을 짜는 공부법들은 공부가 왜 지루하고 재미없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파격적인 행보로 비춰지는 비법들이 사실은, 공부의 기원으로 돌아가 과목을 탐험하는 아이러니였다니.  

어쩌면 착각했을지 모른다. 입시철, 공부가 지식이 되는 체험이 전무했던 우리에게 점수가 오르는 것만이 공부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적절한 공부법을 지도받고 각 과목마다의 흥미법이나 공략법을 인지한다면 '끝도 없는 공부거리'에서 '끝이 보이는 공부'로 탈바꿈 됬을 것이다. <공부의 神>의 부제를 '공부의 지도'라고 이름 붙이고 싶을 지경이다. 입시의 큰 그림이 확보된다면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살피고 가야할 거리를 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듯, 공부의 길을 부지런히 걸었을지도 모를일이다.

원래 테크닉이란 어디에나 마구 굴러다닌다는 사쿠라기의 말을 곱씹어본다. 그걸 사용할만한 의지만 있다면, 환타지물이 줄 수 있는 환상일뿐이라고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