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고척동의 밤>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무렵 겨울의 몸과 봄의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고통과 외로움이 맑게 출렁이는 언어들, 마치 얼음위에 피는 아지랑이처럼...

시속에 보이는 시인의 슬픔은 깊었으나 그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맑았고 그 눈물은 투명하고 때로는 거친 울림으로 읽는 이의 가슴에 떨어진다. 시인의 언어는 쉬웠으나 시의 말은 쉽게 천천히 눈에서 가슴으로 머리로 옮겨 왔다.

80년대의 불의에 저항했던 한 젊은이의 내.외면의 외침이 <고척동의 밤>속에는  놀랍게도 볕처럼 따스하고 벅찬 서정으로 가득 피어난다.

저자 특유의 감성이 세련된 문학적 짜임으로 시가 살아있다. 마치 암흑 속을 힘차게 유영하는 한마리 고래 같다.       

나는 시 <고척동의 밤><고척동의 눈><면회><전봇대><정설><옥중월령가><적><사랑법><연가2>가 주는 울림을 특히 좋아하는데 아마도 먼 길을  돌아 온 듯한 사람의 더운 향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2015년 현실은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서로 끌어안고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사랑하는 법을 <고척동의 밤>을 통해 다시 배운다.  

<고척동의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정의롭고 뜨거운 편린들을 줍다보면 따사로운 봄으로 인도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색다른 독후의 기쁨이다.  이 안도감은 시인의 시선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어쩌면 과도하게 절제된 은유와 비유에서 오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시적표현의 과유불급사태에서 독자들은 시를 읽는 흥미를 잃었다. 그것은 영상등 많은 대체문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에 대한 신뢰를 잃었음이 또한 한 몫이라고 한다면 코끼리 코만지기 식의 평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자의 치열성도 창작의 치열성 못지 않음을 이 땅의 시인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배우지 않아도 본능으로 깨닫는게 있다면 바로 마음이다.      

나는 유종순이란 한 시인의 오래된 시집 <고척동의 밤>에서 위로를 받으며, 깊고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한 힘든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기꺼이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