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근처 내가 자주 가는 시립도서관에 일본 문학코너에 갔다. 이번에는 내가 찾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단 한 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역시 요즘 대세 작가이다. 사실 내가 요전에 발견한 나름 신작들도 운이 좋게 쟁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한국어판을 거의 마무리해가는 시점이라 예전에 조금씩 읽었던 작가들의 신작으로 눈이 가는데 요시모토 바나나는 몇 달전에 읽은 일본어판 키친때문에 다시 눈에 들어왔나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비해 책들이 많이 남아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유명작들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빌려온 책은 비교적 얇은 책들인데 누가 읽은 흔적도 잘 찾아볼 수 없는 거의 새책같다. 재미의 기준을 떠나 빨리 한 권을 다 읽고 싶은 욕심에 빌린 것이 바로 <왕국>시리즈이다. 근데 이 책을 읽다보니 생각처럼 빨리 읽어지지가 않는다. 내 컨디션 문제 플러스 이 책의 특징이 합해져 인 것 같다고 자조한다.

 

<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는 산 속에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산에 거스르지 않고 생활하며 산 속에서 난 약초로 차를 만들어 아름아름 팔며 자급자족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그녀의 이름은 시즈쿠이시. 특이한 이름이다.

2011년의 마지막날은 처음으로 부모님이 연결해준 이성과 만남이 있었다. 소개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집 안 내력이 있고 지방에 몇 백 년 된 나이가 있는 명문가의 장손이며 나름 시골에서 상당한 재력을 가졌다는 집안의 3세와의 맞선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굉장히 선하고 똑똑하다고 했단다. 물론 나는 이런저런 정도도 얻지 않은 채 만났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애프터를 받았는데 나름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처음 한 조금 무거운 소개팅은 나에게 색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평소 소개팅을 거의 받아본 적도 없고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조금은 가닥을 잡았다고나 할까. 타인과의 만남으로 인해 내가 가진 세계가 더욱 선명해 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나만의 세계’ 때문이다.

내가 맞선 남과의 애프터를 거절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크게 작용한 것은 바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좁은 세계? 때문이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더욱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낀 사람이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무언가 차이가 있다. 다른 나라의 것을 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또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말이다. 나는 그런 경험이 부족해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없지도 않은 어설픈 상태에 있다는 것이 최근 나의 컴플렉스인데 이런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이런 나의 선입견과 콤플렉스를 벗어나게 해준 것이 <왕국 1>이다. 시즈쿠이시는 할머니와의 산 속 생활 이외에는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녀의 할머니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려고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졸지에 단 둘 뿐인 산 속 생활에서 벗어나 도시에 나온 시즈쿠이시는 가에데라는 눈 먼 사이킥을 만나 조수로 채용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경험이 적은 사람은 생각이 갇혀 있고 답답할 것 같다는 나의 선입견을 걷어내고 자신만의 독특하다면 독특한 세계가 분명한 사람은 그런 것들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무어라 결론짓기 어렵고 또 무언가 생각나게 하는 짧은 이야기가 바로 <왕국 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