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화의 다방면을 활발히 성찰해온 이스라엘 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지금껏 심리학의 연구대상으로 여겨지던 ‘감정’을 전혀 다른 관점, 곧 사회학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인간 이해희 기존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일대 혁명을 시도했다.  

 

사랑의 아픔을 분석한 <사랑은 왜 아픈가>는 ‘감정 자본주의’라는 일루즈의 연구성과를 또 다른 방식으로 집대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학문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의 ‘아픔’을 ‘줄여줄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이에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사랑이라는 낭만적 감정을 떠받드는 구조의 변화를 짚어본다. 둘째,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의 본래적 갈망과 자유의지가 갈등을 빚어내는 현장을 바라보는 일루즈의 관찰이다. 셋째, 삶의 짝을 찾으려는 인간의 치열한 소망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상품화했는지 짚어본다. 문제해결은 정확한 진단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사랑이 발휘하는 구원의 힘을 노래해는 게 마지막 넷째 부분이다. 문학, 심리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룩한 통찰을 바탕으로 일루즈는 사랑의 힘을 복원하자고 호소하고 있으며, 누구나 음미해볼 만 하다.  

 

사랑의 아픔은 아주 널리 퍼져 있고 아무한테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집단에서 공통적인데도 우리 문화는 그 원인을 개인의 정서 미숙 혹은 정서 장애에서 찾으려 고집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기 치유 목적의 책자와 강연 등은 우리의 잠재 의식에 숨어있는 좌절감이 작용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애정생활을 더욱 잘 이뤄가도록 도와주려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대중을 겨냥한 치료는, 특히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는 여인’에게 좀 덜 사랑하고 더 나아가 ‘자존감’과 ‘자기주장’의 힘을 찬양하라고 가르치는 심리학 대중서는 자율을 자아와 인간관계의 핵심으로 가져다 놓는데 저자는 이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나 또한 심리학 대중서를 따라 남녀 간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금은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결국에는 내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영학 이론 중 매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5단계(Maslow's Hierachy of Needs)에 따르면 4단계가 존중받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모든 인간은(3단계까지 충족이 되었을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싶어 하며 명예로워 지고 싶어 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는 이론이 이를 뒷받침하여 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자는 진정한 자아의 사랑 없이는 아픈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제목과 연관지어 아픈 사랑에 대해 주로 썼지만 참 다행히도 저자는 세상에 아픈 사랑만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현대에도 수많은 형식의 행복한 사랑이 있을뿐더러 이 행복은 어려움 못지 않게 현대적이라고 한다. 다만 저자가 그런 행복한 사랑을 이 책에 다루지 않았다고 했을 뿐 행복한 사랑도 많은 곳에 존재한다. 이 책이 상당 부분 여성의 관점에서 쓰였고, 대체로 여성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기에 남자보다는 감정이 풍부한 여자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