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돌아가신 임길택 시인의 이미지를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흑백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무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 긍정적인 시인은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보면 시인의 작품 또한 밝고 희망적일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어보았다. '저녁 한때'라는.

 "뒤뜰 어둠 속에  

 나무짐을 부려놓고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는 무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셨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쪽을 받아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으시는데

 환희 드러난 아버지 이마에

 흘러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어두워진 산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하셨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이 시는 줄거리가 있는 시이다. 시는 단편소설로 담기에도 약간 양이 부족한 내용을 다룰 때 사용되기도 한다. 삶에 담긴 짤막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압축성 있게 표현하려 할 때. 그런 점에서 시는 정말 인류의 위대한 표현 도구인 것 같다. 

 「저녁 한때」는 나무꾼으로 추정되는 '아버지'와 그를 반겨주는 '어머니(즉 화자는 이들의 자녀인 셈)'가 등장하는 시이다. 시간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한때'다. 공간은 어느 가난한 가정(부유한 가정이라면 이렇게 나무로 생활을 연명하지는 않을 테니)의 부엌이다. 힘들게 나무를 하고 온 아버지는 뒤뜰에 나무짐을 놓고 부엌으로 온다. 땀도 마르지 않은 아버지는 어머니가 건네주시는 무 한 쪽을 받고 말없이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자녀는 3연에서 "어두워진 산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하셨겠지"라며 아버지를 바라본다. 누가 봐도 아버지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 같다. 그리고 부엌의 불타는 소리와 물 끓는 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가 모두 아버지를 위해 있는, 아버지를 감싸는 배경처럼 여겨진다. 이쯤 되면 이 시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평화롭다. 이 시에 등장하는 가족들 간의 정도 이심전심이 느껴질 정도로 화기애애하다. 비록 가난해서 힘든 삶을 연명하고 있지만 서로의 정으로 함께 화목하게 살아가는 가정, 아마 임길택 시인도 이런 삶을 살았으리라. 

 

저녁한때, 임길택, 가족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