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 p.21 빗소리 중에서 -

그날밤 하느님이 고맙게도 채 썰어서 내려보내주시는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나 한 그릇

먹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p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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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아온 시간들이 머릿속 추억이 되어 때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르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좋지 않은 기억이어서 힘들고 다시는 그 시절의 분위기를 마주하고 싶은 생각조차 싹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가 버리는 이의 뒷모습처럼 시야에 저 멀리 가버린 그림자 비슷한 잔상이 되어 아른거리기도 하는 것을 의지 상관없이 이따금 팝업창 수채화처럼 여린 느낌의 영상이 아닌 유화의 툭툭함이 담긴 선명함으로 뇌리에 떠오르는 순간이 빈번해 짐을 부인하지 못할 듯 싶다.

언젠가부터 살아갈 날들을 헤아리는 것보다, 뒤돌아 봤을 때 후회되고, 미련이 되어 다가옴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듯 싶다. 아마도, 이제 인생이라는 길고 긴 시간 여행을 마라톤으로 비유한다면 반 넘게 훌쩍 달음질 쳐 온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세월의 흐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 때도, 혹은 즐겁게 그 흐름에 자연스러이 삶을 맡기며 보낼 때도 있었다. 삶의 모습에는 시시비비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논할 수 없을 만큼 정답이라는 것이 없으니 남의 떡이 더 커보여서 타인의 삶이 좋고, 훌륭하고 멋지게 느껴질 지라도.... 말이다.

누구나 시행착오라는 단어를 합리화 시키면서 여유롭게 때로는 전전 긍긍하며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마주하며 순응해야 하는 것이리라..

제목을 살펴본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처음 작가의 시선을 따라 책속을 조심스러이 떼어놓는 나라는 독자에겐 이 책의 제목에 호기심을 담을 수도 없었고, 온전한 공감을 맘껏 얹을 수도, 그렇다고 에~ 이상하네? 하는 부정적 시각은 더더구나 포함시킬 수 없었던 채로 그냥 무의식적으로 뭔가에 이끌리듯

한줄 한줄.... 빠져들고 있었다고 하고 싶다.

시집의 특성이라 하면 얇고 가볍고...뭐 그런~

이 책은 여느 같은 주제를 담은 시집이라 하는 녀석들이 세상에 옷을 입고 등장하는 그런 느낌과는 어딘지 모르게 차이가 있어 보였다. 조금 더 덩치도 작고, 손에 쏘옥 담길 듯한 솜털같은 가벼움을 함께 선물로 선사해 주었다.

그랬기에 시집을 마주할 때마다 떨쳐버릴 수 없었던 개인적 선입견(편견)이라 할 수 있는

지루하고, 답답하고, 끝까지 읽지 못하면? 하는 그런 느낌이 내면에 자리매김 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소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

3부로 크게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큰 단락에는 대략 스무개 남짓한 시들이 자태를 드러내며 독자의 눈길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남성 작가의 시라는 선입견은 이번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이미 접해 보았음직 한,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이 작가의 눈에는 소홀히 할 수 없었던 듯 싶다.

역시 여성 작가들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살랑 살랑 나부낄 듯한 여림을 담고 있지 않는 듯 했다.

시집이긴 한데, 여느 시집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짧고 단순하고 간단한 어체의 나열이 아닌

시라는 가면을 벗겨 보면, 이것이 산문인지, 시인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함으로 내면에 전해졌다.

그렇다고, 투박하고, 딱딱해서 시종일관 지루함이라는 녀석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을 대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비유해서 풀어낸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작가의 추억을 엿보며 그 모든 것들을 다 공감하며 맞장구 칠 수 있는 삶의 연륜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안타까웠고, 아쉬웠다. 공감을 전해 받은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럴 수 있겠다 하는 막연한 추측을 공감이라는 단어로 합리화 해서 내면에 쌓을 수 있었기도 했기에...

새봄을 시샘하는 꾸리한 날씨가 훼방꾼으로 등장해서 순순하게 자리를 내주며 봄을 맞이한 것이 아니기에 여느 해 보다는 봄의 싱그러움과 설렘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는 듯 싶어서

두둥실 떠가는 맑은 구름의 선명한 모습이 아닌 왠지 먹구름이 가득 담겨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킬 만하게 싱숭생숭한 새봄의 시작을 내딛고 있는 요즘....

가을에 느껴야 알맞을 듯한 우울함과 가라앉음이 짓 누르려 해서 내면에는 봄이 이미 저만치 달아나 버린 듯 했었다.

그런 내면에 잠깐의 여유를 담을 수 있었고, 어디를 봐도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흙과 나무, 작은 이름 모를 풀들...이 보였던 그 시절로의 여행을 한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기에 만족하려 한다.

시집이라 해서, 예전엔 짧고 어렵다는 이유를 붙이며 멀리한 적도 있었던 듯 싶다. 이제는 무조건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음은 그 만큼 책 속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녀석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저자처럼 간절하게 간절하게 바라고 기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음 좋겠다. 바라기는 해도, 이루어 질 수 없기에, 이룰 수 없기에 스스로 그걸 알면서도 기대하는 철부지 어린아이로는 도저히....돌아가려 해도 인위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하루하루, 살아갈 날들 헤아리는 것이 빠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서 철없이 어린시절 그때가 더 좋았어...라고 투정 부리는 몸만 어른, 마음은 아이로 머물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노라 스스로 새끼 손가락 고리걸고 꼬옥....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