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이야기 할 때, 가장 할 말이 많은 작가이면서도 말로 전부를 담아내지 못함을 애통해 하는 작가가 현기영씨다. ’제주의 푸른 밤’을 노래하면서도 그날의 참상에 몸서리치는 이도 작가 현기영씨다.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산을 뛰놀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참혹한 학살의 기억을 걷어낼 수 없다. "순이삼촌"을 이야기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힘겹게 접어두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고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책들을 경외-그것은 경외심이라기 보다 주어진 환경의 유복함을 한없이 부러워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물론 당시의 정치적 상황 역시 숨막히는 파쇼의 억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의 눈길로 바라본 기억이 있으나 그와는 대비되는 혼란과 절망의 시기에 가난이 더해진 ’지상의 숟가락 하나’의 주인공은 뼈아픈 우리의 과거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작가는 다시 담담하게 유년시절을 이야기해 나간다. 제주의 유년시절을 말이다. 4.3이 없었더라면, 빨갱이라는 토끼몰이식 토벌이 없었더라면, 더욱더 아름다웠을 유년 시절을 말이다.

굳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소설의 백미는 이 부분일 것이다.

[아! 제비 떼가 난다! 갑자기 나타난 제비 떼, 찬란한 아침 빛 속으로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든다. 하얀 배로 금빛을 튀기며 경쾌한 동작으로 자맥질한다. 번쩍번쩍 허공 중에 가로세로 무수히 그어지는 경쾌한 빗금들, 빛의 화살들, 서로 엇갈려 날고 곤두박질치고 솟구쳐 오르고, 흩어졌다간 눈깜짝할 새에 모여들고, 모여들어 뭉쳤다간 갑자기 터져 산지사방 콩 튀듯 흩어지고, 무수한 점들로 사방에 퍼져 까맣게 멀어졌다간 다시 쏜살같이 날아들어 순식간에 한데 뭉친다.

폭풍의 밤이 무서웠던 어린 시절, 광란의 밤이 물러간 뒤, 새 아침은 그러한 모습으로 밝아왔던 것이다. 위대한 아침, 시련을 이겨낸 장하고 거룩한 신생의 빛, 아마도 나는 그러한 아침으로부터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 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 빛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 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제주는 아직까지도 아픔으로 남아있는 ’잠들지 않는 남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못다한 이야기에 더더욱 귀기울여야 한다. 
언젠가는 4.3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던 최양일 감독, 그의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