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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시간과 공간이 담긴 서울의 건축

초가을, 건축가 조한 교수의 신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출간을 기념해 ’서울 탐구생활’이라는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이번 강연회는 조한 교수의 1부 강연회와 여균동 영화감독이 사회를 맡은 2부 토크쇼로 나뉘어 진행됐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벙커1’ 카페는 강연회 참석을 위해 온 독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부 강연회에서 조한 교수는 신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을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Q 책의 시작은?

이 책은 ‘건축은 왜 영화나 음악과 같은 예술에 비해 쉽게 감동이 오지 않을까?’하는 작은 물음에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악과 영화는 시간성이 강한 예술입니다. 감동이란 시간성과 함께 동반돼 찾아옵니다. 그러나 건축은 시간성보다는 공간성이 강한 예술입니다. 시간성이 타 예술에 비해 결여돼 있는 만큼 감동 또한 덜 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서울’ 속에 숨어있는 시간성을 찾기 위해 탐구했습니다. 건축에는 다양한 형태로 시간이 내재돼 있습니다. 그 시간의 흔적을 우리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릿한 향기가 나는 이끼를 후각으로, 여기저기 모가 나 있는 벽돌을 촉각으로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서울’을 탐구해 온 것에 대한 기록이 바로 신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입니다.

Q 탐구한 서울 속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저는 선유도 공원을 가장 좋아해요. 선유도 공원은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줘요. 그래서 언제 와도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죠. 선유도 공원은 과거 선유 정수장이었어요. 자연과 조화될 수 있도록 개조해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탈바꿈됐죠. 아직도 정수장의 시간이 그대로 내재돼 있어 물 냄새가 많이 나요. 이곳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으면 어렸을 적, 물에 관한 또 다른 기억이 떠오르곤 해요. 그래서 선유도 공원이 마치 ‘시간의 문’과 같이 느껴져요. 이렇게 공간 속에서 오감으로 시간을 익힐 수 있습니다.

2부 행사는 영화감독 여균동 씨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한층 더 밝아진 분위기에서 토크쇼가 진행됐다. 여 감독과 조 교수는 오랫동안 라디오 ‘오늘’에서 입을 맞춰 온 사이답게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토크쇼는 여 감독이 책을 읽고 난 후,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여 감독 건축가가 된 이유는?

조 교수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자의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건축가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중학교 시절, 장래희망란에 ‘건축가’라는 석 자를 썼더라고요. 저는 대표 작품이라고 할 것은 없고 주로 주택을 지었어요. 마을회관도 지었고요. 건축가라고 해서 꼭 건축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강의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아요. 다양한 일을 하는 게 매력적이에요.

여 감독 건축가의 고뇌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은데요.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물 남영 대공분실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조 교수 건축가 김수근 씨가 정말 위대한 건축가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비판 받을 부분이 있다면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은 잔인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건축미적으로는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이죠. 그러나 그 건물에 쓰임새는 무섭기까지 하죠. 남영 대공분실은 극도로 치밀한 계산하에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가 조감기인데요. 건물에 조감기를 설치하므로써 고문 시 조사관들에게 최고의 권위를 준거죠. 조감기를 통해 빛을 조절한다는 것은 시간을 뺏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대공분실은 이런 디테일한 것 하나까지 신경 쓴 건축물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대공분실을 잘 보존해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 감독 많은 사람이 발문을 써주셨는데요.

조 교수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저에 대해 글을 써주시는 건 감동 그 자체입니다.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글이란 소리 낼 수 있는 동시에 읽을 수도 있는 묘한 존재이죠. 매력적인 힘을 가진 글을 저를 위해 써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발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저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여 감독 못 잊을 감동을 준 장소가 있으시다면?

조 교수 국내가 아니라 아쉽지만 이탈리아 베로나 경기장을 꼽고 싶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계단을 밟는 순간 제가 마치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감동은 한 번의 전율 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가고 싶게 발길을 끄는 것 또한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1, 2부에 걸쳐 진행된 강연회는 독자들을 향한 조한 교수의 마지막 당부로 마무리됐다.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이 저자의 ‘미학관’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 자신만의 미학관을 찾는 지침서가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감동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만의 추억을 되새기고 지켜나가는 것에 도움이 되는 강연회가 됐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