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고, 비가 왔고, 공원이라 나무가 많아서였을까. 유난히 초록이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읽기에는 지나치게 싱그러워 몸이 움츠러들기까지 했다. 표지의 그림은 처음 애니메이션의 예고를 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다. 소년이 여자의 발을 만지고 있는 장면.

비 오는 날, 타카오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의 안 쪽, 주위가 온통 초록으로 둘러쌓인 정자 안에는 자신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투명한 느낌의 여자는 맥주와 초콜릿을 먹고. 책을 읽었다. 그 후에도 비 내리는 날이면 타카오는 공원 안 정자로 향했다.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장마가 끝나고 타카오가 그녀를 다시 본 건 학교 안에서였다. 이름, 직업, 나이, 그녀가 보여줬던 위태로움의 이유를 알게 된 타카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싸움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유키노에게 전한다.

유키노는 처음부터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이란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고, 비가 오는 날마다 정자로 갔다. 비가 오길 기다렸고, 비가 오지 않게되자 서운했다. 마음의 병은 타카오를 만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장마가 끝나지 않기를 바랬지만, 장마는 끝났고 타카오를 다시 만난 건 학교에서였다. 자신에게 고백하는 타카오에게 선생이라 선을 긋지만, 이미 흔들린 마음은 그에게로 뛰어가게 한다.

선생님과 학생의 사랑하면 로맨스란 드라마가 떠오른다. 아직도 여러 패러디에 등장하는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하지만 언어의 정원은 그저 선생과 학생의 로맨스로 보이지 않는다. 확고하게 자신의 꿈을 갖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소년과 교사란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말에 상처입어 걷는 방법조차 잃어버린 어른의 성장소설 같았다. 아니, 등장인물 모두가 사랑을 하고 있으니 로맨스 소설인건가.

나는 책과 애니메이션 둘 다 봤다. 영상으로 봤으니까 책은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생각을 접고 책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은 타카오와 유키노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지만, 책은 타카오의 형, 엄마, 형의 여자친구, 유키노의 전 남자친구의 이야기까지 심도있게 다뤄져 풍성한 느낌이었다. 마치 반 이상이 비워진 퍼즐판이 꽉 차고, 연습장에 연필로 낙서한 그림이 주변인물들의 일화로 색이 칠해진 듯한. 2차원의 그림이 3차원이 된 듯한. 그런 꽉참을 책에서 느낄 수 있다. 영상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인물들의 속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뭐. 결론은 둘 다 보니 참 좋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