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이 넘는 시간을 공부했다. 하지만 영어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다. 한창 시험을 위해 공부할 때도 시험을 떠나보냈을 때도. 영어란 언어는 보고 들을 때마다 낯설어졌다. 그 결과 지금은 어쩌다 외국인이 길거리에 보이면 혹시나 말을 걸어올까봐 슬쩍 피한다. 공부한 시간이 아깝기도 해 다시 영어를 시작해볼까 생각했지만, 한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절교 후 십 수년이 지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듯 어색하기만 했다. 더듬거리며 말하기도 어려운데, 아니 기초회화도 다 잊어버린 마당에 거침없이 말하라는 다소 도발적인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왕 시작할거라면 이제까지 배웠던 문법, 독해가 아닌 말하기로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저자는 말하는 외국인과 거침없이 대화하는 비법은 나만의 18번을 외우고 있으라는거다. 잘 아는 노래는 노래방에 가서 가사를 보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상황, 질문에 맞는 나만의 준비된 문장들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다고. 언어관련 책을 보기 전 내가 꼭 하는 일이 있다. 출판사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출판사 자료실에는 출간된 책의 MP3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단, 수록된 예문만 읽어주는 책들과는 달리 저자의 강의가 녹음되어 있었다. 3명의 수강생과 함께 했는데, 마치 나도 그 곳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 듣는내내 즐거웠다.

나에게 맞는 문장을 반복해 내 것으로 만들 것을 주장하는 저자의 강의는 여러가지 단어를 기본 문장에 넣어 반복했다. 한국인이 착각하거나, 어려워하는 영어 발음을 지적했다. 되도록이면 책을 보기보다는 들으면서 반복하기를 권했다. 혼자 열심히 책을 보며 발음해보기 보다 영어 문장을 보지 않은 채 말하는대로 따라하는 것이 입에도 붙고 발음에도 효과적이었다. 기껏 공부했는데 외운 문장이 발음이 틀려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우니까.

생각보다 폭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책이었지만 영어만 나열해 딱딱한 책은 아니었다. 유머도 종종 있었고, 예문에 관련된 일화도, 발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니 이제까지 봤던 영어책보다는 재미있었을지도. 주제가 외국인과 대화하기라 책에서 소개하는 문장은 가족, 취미, 회사 일 등 소소한 일상에 대한 것이 많다. 문장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외국인과 대화하려고 할 때의 문제점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과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해도 문법이 맞는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쉬운 난이도의 단어, 틀리기 쉬운 발음, 외워야 할 문장이 조금씩 입에 붙자 아주 약간이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은 2/100정도지만 소개된 문장들을 100% 소화한다면 외국인들과의 1시간 수다도 먼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