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주인공 소희가 초등학교까지

보낸 달밭마을을 떠나면서 시작 된다.전작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보면 소희는 어려서 아빠를 사고로 잃고 엄마마저 떠나버려 할머니와 단둘이 달밭마을에서 살게 된다. 할머니는 소희를 성심으로 키우고, 소희도 소희 표현대로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고 돌아가신 할머니로 인해 달밭마을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소희는 서울에 있는 작은집으로 가게 되지만 달밭에서보다 나은 삶을 살지는 못한다. 사촌 동생 둘과 같은 방을 쓰며, 걸리적거리는 돌덩이 취급을 받고, 작은 엄마 미용실에서 잡일을 하며 힘든 삶을 산다.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보내고 바쁘고 힘든 삶에 지쳐가고 있을 즈음 소희에게 재가를 한 엄마가 찾아온다. 엄마는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 소희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런 엄마가 소희를 엄마의 집으로 데리고 가면서 소희는 꿈에서나 봤을 법한 방을 가지게 된다. 소희는 이제 앞날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고 이 꿈에서 깨지 않기를 바랐다.

여기까지는 소희가 보낸 불우한 과거의 보상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다. 넓직한 정원이며, 으리으리한 이층집 게다가 인상 좋은 키다리 아저씨 새 아빠에 귀여운 막내 동생 우진이까지.

그러나 인생은 상상대로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다가가려해도 좁혀지지 않는 엄마와의 거리와 사춘기에 접어든 11살 첫째 남동생 우혁이의 냉담한 도둑을 보는 듯한 시선은 보상보다 불안하고 힘든 정신적 고통이 되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와 정상적이지 않은 현실이 들통날까봐 가면 아닌 가면을 쓰면서 소희는 점점 더 솔직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조금이나마 소희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던 건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는 인터넷 카페의 닉네임 디졸브였다. 그에겐 감출 것도 속일 것도 없었고 익명의 자유가 있어서 편하고 좋았다.

한편,서먹하고 불편하게만 대하던 엄마가 소희라는 족쇄로 인해 새 아빠에게 폭행을 당하고 살았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소희는 또다시 괴로워 한다. 넓고 예쁘고 아늑하던 소희의 방은 어느새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소희의 방 원래 주인이던 아빠의 딸 20세 리나가 미국에서 다니러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희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부담감으로 리나를 맞을 준비를 하였다. 리나가 오면 어떤 불화가 또 들이닥칠까 생각하였으나,리나는 소희에게 해결사이며 닮고 싶은 자매의 모습이었다. 리나는 아빠의 새엄마에게로의 폭행도 묵과하지 않고 아빠에게 엄포를 놓으며 아빠를 뉘우치게 하였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백화점 쇼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웃고 즐기면서 소희와 엄마와의 어색함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었다. 소희는 이제 엄마의 딸이 아닌 소희네 가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 좋기만 한 것도 너무 나쁘기만 한 것도 세상엔 없다고 했던 소희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의 인생도 똑같은 것이 아닐까 죽을만큼 힘들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햇살이 비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

책을 읽으며 나도 같이 마음 조리고 학교 친구인 지훈과 재서 사이에선 같이 설레었다. 10대가 있었냐는 듯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 살아온 일상에서 15세 소녀로 돌아가게 해 주는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고민과 셀렘을 한아름 끌어안고 살았던 그 때. 지금도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 때의 추억에 잠겨 웃고 있다.

무심히 지나치던 철없다고만 생각했던 중학생들에게도 무지 심각한 일이 무지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마주하게 되면 아이들이 아니라 같은 동급으로 대해 주어야 할 것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소희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