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했던 여고시절부터 뭣모르고 시를 좋아했던 그 때부터 서른이 한창 넘은 지금까지 심란하거나 우울해질 때면 기분전환을 위해 시를 읽는다.

이번에 읽은 시집은 원경 스님의 <...그대, 꽃처럼>이었다.

제목 앞에 수식어처럼 붙어진 피어나는 때와 지는 때를 아는 꽃처럼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채 살겠다는 다짐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옅은 분홍바탕의 편안한 표지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준다.

이 시집은 '깨침의 노래'/ '가슴 속 깊은 그리움'/'함께 차를 나누며'/'심곡암 이야기' 등으로 나누어 시가 쓰여있다.

시집을 받았을 때 마침 아가가 자고 있어서 식탁에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 한숨에 끝까지 다 읽어버릴정도로 빠져들어버렸다.

다시 첫 시로 돌아왔을 때는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어보았는데 어느새 심곡암의 암자 한 자락을 거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깨침의 노래' 부분의 시를 읽다보면 원경 스님은 참 세상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구나 싶고, 불자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집착없이 겸허한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그리움'에서는 소신공양을 하신 문수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도 있고,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객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시도 있다. 하지만 스님에게 '객'이란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달빛이 될 수도 있고, 바람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 도 있으며, 계절이 될 수도 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안의 시를 읽다보면 차를 즐기는 스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차를 마시면 맑은 천지가 내 안에 고인다는 스님에겐 차를 마시는 것 또한 일상이자 도를 닦는 하나의 과정이라 보여진다. 그 안의 시 중 [차향]이라는 시에서 '님 맞아/ 차 마시나/ 차향이/ 더욱 좋다// 차 마시며/ 님 맞으니/ 님 향이/ 더욱 좋다'는 짧은 시가 너무 좋아서 자꾸 읊조리게 된다.

'심곡암 이야기'에는 세상과 완벽히 분리되지도, 그렇다고 세속의 더러움 속에 파묻히지도 않는 그 경계속의 심곡암의 모습과 그 안에서 스님이 느끼는 일상과, 심곡암의 봄, 가을 축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세 편의 산문도 읽을 수 있다.

<...그대, 꽃처럼>을 읽고 난 후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원경 스님을 뵈러 심곡암 나들이를 결심하게 되었다.

스님의 객이 되어 더불어 차를 마시지는 못하더라도, 아니 스님을 못 뵈더라도 부처님 앞에서 합장하고 절을 올린 후 심곡암을 거닐다 보면 원경스님의 일상도 느낄 수 있고, 그 안에서 스님이 느꼈던 소소하지만 깊은 감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 시집에 손을 뻗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