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조선 최대의 역모의 사건. 기축옥사는 3년동안 죽고, 귀양가고 투옥된 자가 1000명에 달하는 참극이었다. 신정일 선생님이 쓰고 다산북스에서 나온 책은 조선시대 4대 사화라고 막연히 알고 지나갔던 작은 지식을 그 현장  속으로 사람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이, 정철 , 유성룡, 이항복의 인물 면면과 그들의 행적이 역사 속의 기록이 아니고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그들이 처한 입장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정여립은 천재였다. 사서오경은 물론이고 글로 적힌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모호한 법이 없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대동계를 조직해 공동체를 만들었고 군사를 조련 한 것은 이이의 십만양병설보다 실천적인 대처방안이었다. 정여립은 봉건사회의 강령과 정면충돌하는 “천하는 만인이라는 것” 이라는 대도사상을 내세웠다. 시경의 다음 구절을 즐겨 암송했다고 한다.

  “씨 뿌리고 거두지 않으면 어찌 많은 곡식을 얻으며, 사냥하지 않으면 어떻게 뜰에 걸려있는 짐승이 보이겠는가? 군자여, 일하지 않는다면 먹지도 말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귀천의 씨가 따로 없다. 천하는 백성들의 것이지 임금 한사람이 주인이 될 수 는 없다라는 그의 사상이 조선 신분사회에서 충돌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 왕위세습을 부인하고 왕권이 혈연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을 설파한 진보적 사상가였다. 천하가 공물이라는 그의 주장은 공화주의자 였다.

  가혹한 왕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정감록의 영향은 거대했다. 연산군 이래 국정문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암담한 세월을 보내던 백성들에게는 정감록에 대한 기대가 정여립의 진보사상과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서인의 영수였던 정철과 송익필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과 정여립과 이발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군자와 소인이 얼음과 불처럼 어차피 공존할 수 없었다.

  정철의 권력 탐닉은 어린시절 당쟁에 휘말린 아버지와 형의 고초를 보면서 한번 내 몰리면 벼랑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축옥사로 정권을 되찾았지만 정철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세자책봉문제로 선조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선조의 변덕으로 말년에 빈곤과 울분 속에서 신음하다 58세 나이로 죽을 맞이했다. 정철과 같이 기축옥사를 배후 조장한 송익필 또한 최영경을 길삼봉이라고 입증하는 과정에서 물의를 빚어 정철과 같이 몰락의 길을 갔다.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아는 사람 집을 전전하다 죽었다.

  무엇보다 피의 당쟁을 조장한 장본인은 바로 선조였다. 외침에는 한 없이 나약했지만 자기체제에 대한 도전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선조는 인조나 영조처럼 아들까지 믿지 못하는 임금이었다.

  서인들은 민인백을 시켜 정여립을 때려죽이고는 자살이라고 퍼뜨렸고 선조는 정여립 조상의 묘를 파서 가루로 만들어 날리고 그의 친척들은 모두 고향에서 쫒아 냈으며 정여립의 집터를 파헤쳐 숯불로 지짐으로써 그 맥을 끊어버렸다. 그 여파는 몇 년동안 지속되었으며 조대중은 관기와의 이별이 서러워 울었는데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해서 울었다고 죽음을 맞이하였고 김범은 평소 눈병으로 바람만 쏘이면 눈물이 나는 것도 정여립과 같이 엮어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 당시의 당쟁과 참극이 가히 살얼음판 이었다. 정여립 난이 끝난 후에도 나라 곳곳에서 정여립이 죽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있다는 유언비어가 오랫동안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또다른 정여립의 출현을 기다리는 민중의 오랜 염원이었다.

  왕건의 <훈요십조>의 제 8조에서 비롯한 전라도 차별의 역사는 조선시대 기축옥사로부터 동학농민혁명과 현대사에 광주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호남지역은 반역향으로 지목되어 인재등용에서 큰 차별을 받았다. 세습 군주제 아래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정여립과 허균, 정봉준과 김개남, 단지 무인이었던 이성계와 문인이었던 정도전의 행복한 결합만이 성공했다.

  교과서에서 알았고 단지 시험치기 위해서 외웠던 사대사화를 이 책을 통하여 사화의 피비린내를 맡았다. 부르짖은 진보사상과 가치관이 빅뱅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짓고 그의 절망과 참극이 또 누구의 권력과 성공이 되는 것 이었으며 손에 쥔 권력은 물거품처럼 떠나가는 것을 알았다.

  왕권시대에 세습제에 정면 도전했고 대동계를 하며 공동체를 생각했던 사람 정여립. 이제껏 역모사건으로만 알았던 한사람이 존재로 다가 왔던 책이다. 나 또한 우직하게 전통의 가치로만 살아왔던게 아닐까. 그가 이이를 비판했던 것이 미움을 산 계기가 되었듯이 하극상은 절대 안되고 개인의 안위만이 최선이라고 몸을 숙이고 납작 엎드려 소시민으로 산 나.

「정치란 난로와 같아서 너무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을 수 있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춥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둘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화상을 입는 쪽보다 추운쪽이 훨씬 낫다.」

  이 책속에 조용헌 소장의 말이 책을 덮는 순간 크게 다가온다. 대선과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이름도 가물가물한 이들이 모임을 만들자고 불쑥 전화를 한다. 자칫 화상을 입을까 조심해서 전화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