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꿈>을 통해서 김성연 작가를 처음 만났었다. 몽환적인 느낌과 뭔가 여운을 느끼게 하는 글에 매료되어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신뢰를 키워준 글. 읽으면서 뭐랄까 글의 분위기가 소재가 참 특별하다고 느꼈었다. 제목만을 보며 단순히 한 소년의 사랑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 밖의 글이었다.

쉽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同性간의 사랑, 18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랑. 쉽지 않은 두 가지의 사랑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에 결국은 이해하게 되고 마는…….

“내가 먼 데로 떠나면 넌 나를 얼마 동안이나 기억하고 있을 거야?”

“네가 가긴 어딜 가.”

“말해 봐.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 건지.”

“몰라. 상상하기 싫어.”

“그러지 말고.”

“모른다니까.”

“내가 없어지면 너 다른 여자 사귀어도 돼. 대신 날 잊지는 마. 알았지? 그 약속은 꼭 지켜야 돼.”

처음 두 페이지 정도를 읽었을 때만 해도 지현이라는 이름에, 사랑은 남녀간의 감정이라는 선입견에 지현을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금방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오랜 시간 성훈을 가슴 아프게 하고 고독하게 만들 상대가 친구에게 은밀한 감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 동성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훈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고 목숨을 저버린 지현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겨진 성훈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 성훈이 다시 누군가를 마음에 담게 된다. 20년 만에, 18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나는, 막 숙녀가 된……. ‘이 남자, 완전 도둑놈.’이네 하는 생각이 들고도 남을 나이차.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부녀지간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법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갓 스무 살이 된 여자와 곧 마흔이 될 남자, 분명 그림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이해하기 힘든 사랑인데…… 성훈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린 편의점 알바생 선유에게 첫눈에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고 20년 만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고 다가서려는 그의 서툰 마음이 애잔해서, 또 쉽지 않은 사랑을 하려는구나 싶은 안타까움과 나이는 서른여덟이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그의 마음을 보면서 그저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멋진 외모와 분위기, 성숙한 남자에게 두근거림을 느끼고 그 남자가 평소 예쁘다고 생각했던 집의 주인이자 그녀가 좋아하는 로맨스소설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선유는 성훈에 대한 마음이 커지게 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처음 느껴보는 풋사랑의 설익음에 마냥 설레어하고 그녀를 향한 성훈의 세심한 배려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누가 뭐라 하든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스무 살의 여자와 서른여덟의 남자는 사랑에 빠졌다.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 말하지도 ‘우리 연애 시작, 땅’이라는 것도 없지만, 알 수 없는 선이 존재하긴 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을, 서로가 닿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더 깊어지고 어느새 불분명했던 두 사람의 관계도 확실해졌다.

그것도 잠시, 지현이 남기고 간 상처에 성훈은 두려움을 느끼고 애처 그들의 사랑을 가볍게 치부하며 선유에게 그에게 상처를 준다. 성훈의 두려움과 불안감, 부담감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리석어 보였다. 물론 서른여덟의 남자와 스무 살의 여자의 사랑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지만, 선유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지만 결국 그가 먼저 손을 놓았다는 것이, 도망친다는 것에 실망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이중적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고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유를 보면서, 그녀의 흘러넘치는 마음을 조금만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도망치려는 어리석은 성훈을 보면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선유처럼 그에게 솔직해지기 바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힘들어한다. 그리고 성훈을 찾아온 하나의 꿈……. 솔직히 정말 반전이었다. 성훈을 찾아온 지현의 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첫 눈에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고 끌렸던 선유와 성훈을 보면 이해가 되었다. 불행하게 끝났던 성훈과 지현의 사랑을, 성훈이 지현의 이름을 딴 필명으로 로맨스소설 속에서나마 행복하게 해주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결국은 성훈과 선유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두 번 같은 생을 살라고 해도 나한테는 너였다. 그러니까 후회는 없어.

성훈아, 내가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그저 나를 잊지 말라는 거야. 나라는 사람이 네 곁에 있었다는 것, 잠시나마 우리 서로 사랑했다는 것, 네 인생에 내가 존재했음을 영원히 기억해 줘.

다음 생이라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 다시 만나자. 그리고 오래오래 사랑하자.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사랑하자. 그때는 너와 나…….

결국 소년의 꿈은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로 태어났으면 하고 바랐던, 사랑하는 성훈과 함께 하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던 지현의 꿈이.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결국 두 사람은 이루어졌어.’ 그렇게 느꼈다는 것만으로 벌써 내가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소년의 꿈>은 그 뒤에 접했던 김성연 작가의 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글이었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금기시되고 어려울 수도 있는 소재를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전해주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보였다. 소재 때문에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다각적인 생각을 해보게 하는 글이었다. ‘글을 마치며’를 읽으면서 얼마나 놀랐던지! 마저 읽고 다음에 이어지는 작가후기를 보면서 휴~하고 안도했었다. 작가님이 여러모로 센스쟁이이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