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블로거님들의 강추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책 13계단을 드디어 다 읽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제목은 아주 많이 들어왔고 그 제목만 보고 일본소설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처음에는 법정소설인가 싶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기대했던 법정소설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법에 관한, 더 자세히 말하면 사형제도에 관련된 추리소설이다.

에도가와 란포상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된 작품.

 

작가가 변호사나 법에 관련된 직업을 가졌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이 있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법제도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파헤쳐가는 사건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사법제도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비슷하니 이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사법제도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결코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한 생명에 관련해서 정말로 이런 문제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살인사건현장에서 잡혀 사형집행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는 사실상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이다. 어느 날,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이 사형수의 무죄를 밝히는 댓가로 거액의 배상금이 걸리게 되고,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난고라는 교도관과, 그의 추천으로 살인자이자 가석방자인 준이치가 이 임무를 같이 맡게 된다.

 

사형수가 기억하고 있는 단 하나의 단서는 '어딘가에서 자신이 올라갔던 계단'.

이제 이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이 사형수를 구제해야만 하는데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 과정에서 일본사법제도의 모순점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살인을 많이 한 사형수들일수록 행정절차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사형기일이 길어진다는 사실. 사형수의 사형집행 후에 진범이 드러났을 경우에는 그 사형자체의 문제점을 덮기 위해 그 진범을 공범으로 몰아서 같이 사형시키고자 한다는 사실. 사형집행을 최종결정하는 법무부 장관등이 실제로 각 사건들을 검토하고 최종결재하는 것이 아니라 막판에 책임질 필요가 없을 경우에 몰아서 결재한다는 사실.

사람의 생명이 관계되는 것임에도 이 정도로 신중함이 떨어지고 단지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처리된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사형집행자로써의 교도관의 입장과 예행연습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사형을 치루고 난 후에도 끊임없는 번뇌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부분이다. 또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형집행을 코앞에 둔 사형수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면서 죽음의 공포에 맞닿은 인간의 모습에 그냥 맘이 아프기만 하다.

누가 범인일까...그리고 설마 이 사람이 범인일리가..싶은 궁금증도 일고, 사형집행일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진범을 찾아야 하는 시급한 상황.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수색작전도 아주 흥미로웠지만. 내게 있어서 이 소설은 역시나 사법제도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