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한겨레출판(2015)

시골로 오기 전, 저는 부산 롯데호텔과 마주 보는 아파트 25층에 살았습니다. 진양고무라는 신발회사가 있었던 곳에 새로 세워진 타워형 아파트 였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마주 보면 롯데호텔과 백화점이 보이지만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면 철거되지 않은 공장 창고 같은 건물이 보였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면 외제차를 쉽게 볼 수 있었고 차를 두 대 이상 가진 세대도 많았습니다. 저희가 살았던 25층 위에는 의사 부부가 살았고 그 라인 어디에는 신랑이 다녔던 대학의 노교수님께서 살았습니다.
언젠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언니가 놀러 와서는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뭐 먹고 사니?"하며 물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소설 「잠실동 사람들」을 읽으면서 아파트에 살던 때가 생생하게 생각났습니다. 잠실동은 개발로 인해 옛모습을 잃어버리고 중산층이 들어와 살면서 표면적으로는 발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빈부의 격차가 두드러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실동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살던 그 동네도 그랬거든요.
한 교실 안에 백화점 신상으로만 옷을 입는 아이와 낡은 옷을 입는 아이가 같이 공부하고 학원을 지나치게 다니는 아이와 학원을 다니지 않아 남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환엄마, 해성엄마, 태민엄마 등은 제가 살던 아파트에도 있었습니다.

소설은 여대생의 성매매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불쾌하고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질지 긴장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지환엄마가 영어 강사에게 갖는 감정이 도화선이 되어 사건이 터질지, 아니면 머리가 아프다는 해성이나 지성이에게 큰 병이 생길지 어떤 사건이 발생하여 팽팽한 긴장을 유발할지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일상을 벗어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치맛바람 센 엄마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담임선생님이 자살을 시도하게 되지만 사건은 극단으로 치닿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무마가 되고 각자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잠실동에 사는 모두가 주변인이면서, 모두가 주인공인 셈입니다.
성매매를 한 여대생은 여전히 가난하며 회사가 어려워진 지환 아빠나 태민 아빠의 형편이 좋아지지도 않고 가난한 여대생의 엄마는 여전히 가사도우미를 할 것이고 학력 위조 과외선생은 여전히 지하방에서 술을 마실 겁니다. 잠실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이야기이며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거나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소설 속에 저는 지환 엄마가 되었다가 경훈 엄마가 되기도 합니다. 작중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다 보면 억눌렸던 제 감정이 다시 표층으로 떠오릅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쾌적하지 못한 기억, 아파트에 살던 예쁜 친구에 대한 부러움, 언제나 당당한 아줌마에 대한 거부감과 동시에 드는 경외감... 「잠실동 사람들」은 잊고 있던 감정들을 환기시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어쩌면 이런 감정들이 더 이상 내 속에서 나를 상처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시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잠실동 사람처럼 살지 않기를 다시 한번 바래봅니다.

「잠실동 사람들」은 사실적인 인물과 사건으로 소설의 흥미를 유지합니다. 인물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일상적인 사건이 이어져서 소설을 더 생생하게 만듭니다.
「잠실동 사람들」을 읽으면서 누구라도 한 번쯤은 느꼈을 마음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