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메이드」,  아이린 크로닌, OPUS PRESS(2014)

「머메이드」는 소설 같은 수필입니다. 다리가 없이 태어난 저자의 삶을 기록한 이야기라 '장애가 있지만 잘 극복했다'가 주제인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가 저는 그녀의 삶이 아닌 그녀 부모님의 삶에 시선이 자꾸 갑니다.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입바른 아이, 옥희가 생각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시선에서 11명의 아이를 둔 엄마의 행동을 관찰하고 묘사하는데 마치 영화를 보듯 그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조이 팽어인데, 그녀는 육아로 늘 지쳐있습니다. 9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8번째 아이를 안고서 졸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때론 아이를 임신하고서 연신 담배를 손가락에 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는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임신한 엄마와 의족을 맞추러 가는 장면에서 저자는 홀로 서지 않겠다고 엄마의 동그란 배에 매달립니다. 그 사이 엄마는 가방에서 동전을 찾아 주차비를 지불합니다. 무거운 몸,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들, 동그란 배에 매달리는 장애를 가진 아이... 임신, 출산 또 임신을 반복하면서 그녀의 일상이 얼마나 힘에 겨웠을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어쩌면 엄마인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 그녀에겐 숨 쉬는 것이 가장 호사스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몇 년 후 로사는 나에게 엄마가 또 다시 임신했다는 소식에 빨래방에서 혼자 은밀히 흐느끼는 것을 봤다고 말해주었다. (중략) 하지만 누군가가 엄마에게 어떠냐고 물었다면 엄마는 분명히 "좋아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 숨을 내쉬며 조용히 웅얼댔을 것이다. "그냥 수녀나 될 걸 그랬어."'(p.112)

'그냥 수녀나 될 걸 그랬어'라는 웅얼거림에 웃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를 겨우 넷 키우면서도 힘겹다 투덜대는 저라, 아이린의 엄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행로에서 혼자 울 수는 있어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장애아이를 둔 가족의 일상 생활에 다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일상이 더해져서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간의 사랑과 믿음으로 장애를 극복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듯 아이린의 삶도 그렇지 못 합니다.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엄마, 입원하면 전기충격 치료를 받고 퇴원하면 발 밑에 아이들을 매달고 집안일을 합니다.
엄마가 병원에 갔을 때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준 아빠는 어느날 돌연히 독립을 선언하고 어느날에는 그녀의 오빠가 교통사고로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머메이드」의 저자는 장애를 가진 자신의 삶에 대해 글을 적으면서 세상사람들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해주길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 가족의 삶에 대해 적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머메이드」를 읽은 독자가 그녀의 이기적인 면에 분노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장애를 가진 그녀의 삶을 동정하면서도 그녀에게 종종 화를 내는 저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저는 철저히 엄마의 시선에서 책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정신병원에서 잠시 외출한 엄마의 목을 잡고 늘어지며 계속 안아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어린 아이에게 화가 나는 것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어린 아이들에게 화가 나는 것과 똑같을 겁니다. 약의 부작용으로 다리가 없어진 그녀에게 엄마의 무책임한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엄마가 알고 선택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계속된 엄마의 변명과 회피 속에 그녀는 엄마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사회가 괜찮다고 권해준 약이 그런 부작용이 일어날 거라 예상하는 부모는 거의 없었습니다. 탈리도마이드는 비행기 스튜어디스가 전해준 신경안정제거나 임덧방지제일 뿐이니까요.
임신후 42일 이전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하면 100%로 사지가 없든지, 사지가 있어도 매우 짧고 손발가락이 모두 없거나 소실된 기형아를 출산하게 된다는 것은 전세계 만 명 넘게 부작용이 발생한 뒤에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장애를 문제삼지 않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습니다. 그녀를 닮은 예쁜 딸아이를 키우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지만 아이의 발레 구경을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머메이드」는 약의 부작용으로 다리 없이 태어난 저자와 가족의 삶을 소설처럼 기록했습니다.
저자가 살아온 삶의 개인적인 기록인 동시에 무지한 시대의 비극을 기록한 글입니다.
임산부에게 괜찮다고 했던 약이, 한때는 입덧을 완화해준다고 권하던 담배가 지금은 금지되어 있고 또 다른 약물은 괜찮다고 합니다.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우리가 알고 지나가든 모르고 지나가든 저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몇 년 전에 의약품은 아니었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장애를 얻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보다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장애는 스스로 극복 가능하지만 장애아를 가진 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장애에 대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은 평생 갑니다. 아이가 장애를 문제 삼지 않고 잘 살고 있다 하더라도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시선이 자라 어른의 시선이 될 때까지 기록한 삶은 나와는 무관한듯하지만 결코 남의 일은 아닌 이야기라 가슴에 남습니다. 「머메이드」를 읽으며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