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철학하다」, 에드윈 헤스코트, 아날로그(2015)

집을 철학한다는 것은 집을 기호로 보고 그 기호의 의미를 찾는 겁니다. 기호는 의미를 가진 표시, 표현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와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저는 시골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 아파트에서 살 때에는, 집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집과 인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골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는 같은 크기의 창문에 같은 위치의 방과 거실, 같은 인테리어의 욕실로 내 집과 이웃집이 전체적으로 비슷합니다. 우리 집이 다른 사람의 집과 비슷하듯이 우리도 사회화란 명목으로 교육을 받아 서로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살에는 한글을 읽어야 하고 몇 살에는 취직을 해야 하고 몇 살에는 결혼을 하고 집을 구입해야 한다는 기준에 맞춰 사는 인생이라면 아파트처럼 규격화된 집이 적합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왕이면 한강변에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라면 더욱 좋겠지요.

저는 오래된 나무로 둘러쌓인 시골집을 선택했는데 이 선택으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삶에서 탈출했습니다. 단순히 집을 산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지요. 집이 삶이 되고, 집을 구성하는 침실, 부엌, 거실, 서재 등은 삶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심지어 문의 손잡이까지도 삶의 기호가 되고 기호를 읽어냄으로 주인의 삶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한때 유행하던 심리테스트가 있습니다.

'남자친구집에 놀러간 그대, 가장 처음 살펴보는 것은?'

1. 침대
2. 책장
3. 수영장
4. 테이블 위의 꽃

저는 책장의 책을 가장 먼저 봅니다. 심리테스트의 결과를 찾아보면 책장을 먼저 보는 사람은 집 주인의 지성미를 중시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침대는 성적인 매력을 중시하고 수영장은 재력을 중시하고 테이블 위에 꽃은 외모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이런 심리테스트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은연 중에 침대, 책장, 수영장 등의 상징성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의식을 하든 의식을 하지 못 하든 집의 상징성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집을 철학하다」는 문학작품과 영화 등에서 나타난 집의 모습을 통해 집에 드러난 기호를 읽어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집의 상징성까지 모두 풀어내고 창문, 거실, 부엌, 침실, 천장, 책, 문, 손잡이까지 무의식에 존재하는 의미를 의식의 층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지하실을 가져본 적이 없으면서도 지하실을 두려워하는 것,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지하실을 기억과 방치의 창고로 보는 상징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벽난로를 보면 행복한 집이 연상되고 수영장을 보면 부유층의 집이 연상되는 것은 이미 그 상징성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문의 열쇠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 집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은 대부분 열쇠를 이용하는데, 여기에는 명백한 성적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자궁 같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에 열쇠를 꽂기 때문이다.'(p.156)

'자궁 같은 집', '성적 의미의 열쇠'라는 표현들로 집을 철학하는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집은 생명이 잉태되는 세상이며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의식이 필요합니다. 열쇠를 꽂는 의식이 끝난 다음에는 우리는 손잡이를 잡는 동시에 생명이 잉태되는 세상과 악수를 합니다.
무의식의 층에 우리가 기록한 삶이 우리 집에 남아있고 우리는 그것을 집으로 표현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집이 그저 넓고 편리하다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끌림에 의해 선택된 것입니다.

집을 구성하는 것들의 의미, 집 자체의 의미, 내가 모르고 있던 내 삶의 의미들을 집을 철학하면서 알아갑니다. 「집을 철학하다」를 읽으면서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