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정수현. 시상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 작가 똘재(서영재)에게 호감을 느낀다. 가족들의 부재에 쓸쓸함을 느끼던 수현에게 똘재의 존재는 큰 위안이 되었다. 똘재와의 관계에서 자꾸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수현의 충격적인 과거들과 서서히 마주하게 되는데...

 

살인과 폭력이 등장하고, 생각보다 높은 수위임에도 덤덤하고 초연한 필체 때문에 '19금 소설'이라는게 우스워질 정도다. 전작들에서 담백했던 문장들은 거칠고 독해졌다. 특유의 위트는 등장인물간의 대화나 도하 캐릭터를 통해 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낯설다.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처음엔 적응하기도 애를 먹었다. 신선함과 낯설음의 사이에서 고민도 조금 했다. 계속 읽을까 말까하는... 하지만 김려령이니까, 그녀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무언가 보일 것 같아서 천천히 다가갔다.

 

'너를 봤어'로 시작되는 정수현의 소설. 그 소설의 내용까지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정수현이 가지고 있는 서영재에 대한 애달픈 마음들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마지막 선택에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도 그 애달픈 마음 때문이다. 숨겨져 있던 과거로부터 그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과연 그것 뿐이었을까. 같은 마음으로 사랑했고 남겨진 영재가 한없이 안타깝다. 그러나 사랑에 목말라 했지만 갈증을 채울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한 정수현라서 그 선택에 납득은 할 수 없어도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무엇을 얘기하려 하는지 마음에 확 와닿질 않는다. 무엇을 느끼기도 전에 끝나버리고, 두리둥실한게 너무 애매하게 보여 솔직한 마음에 조금 아쉽다. 

 

전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았던 김려령 작가.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한정 짓기엔 너무 큰 울림을 줬던 전작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썼던 작가가 '19금 소설'을 들고 왔단 소리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가 쓰는 성인 소설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소설의 내용이나 재미를 떠나 작가의 눈부신 변신이 돋보인다. 여태 우리가 알고 있던 작가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처럼 보인다. 감추고 있던 손톱을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이니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소설이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건 청소년 문학만 쓸 줄 아는 작가가 아니라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팔색조처럼 변신 가능한걸 확인했으니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해 본다. 

 

너를봤어, 김려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