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이라는 시인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의 시는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처럼 유명한 시들은 봤지만 그 외의 시는 따로 찾아본 적이 없었다. 박인환 시인 작고 6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시집 <검은 준열의 시대>가 출판되었다. 기자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고, 시인 이상을 존경했으며, 모더니즘 시인으로 불리던 박인환의 ‘시’에 대한 궁금증에 시집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처음은 박인환 시인의 일생을 짧게 요약한 글로 시작한다. 여자인지라 그런지 글을 보며 문학가의 부인은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상을 추모하고 기리는 자리에서 술을 며칠 내내 진탕 마시다 갑자기 죽었다 하니, 그 이후 부인이 정말 고생했다고 하니 참으로 남편으로서는 철없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트럼보>에서도 극본가 트럼보는 가족을 고생시키지 않았던가. 박인환의 죽음 외에도 그의 시에 얽힌 이야기나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도 접한 후에 그의 시를 읽게 되니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는 크게 5부로 나뉜다. 엮은이의 말에도 나와있지만 시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주제별로 엮었다고 한다. 확실히 비슷한 소재끼리 엮으니 내용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시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1부였고, 그나마 읽기 수월했던 부분은 고향, 계절, 자연을 노래한 5부였다. 박인환의 시는 과거에 쓰던 언어로 쓰인 부분도 있고, 굉장히 시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안에 담긴 속뜻이 정말 궁금하긴 하지만 문장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보니 책의 두께가 두껍지 않음에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배경지식도 충분히 있어야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 날 때 시를 하나하나 찬찬히 해체하여 해석하며 또 한 번 읽어 볼 생각이다. 쉽게 쓰여진 시가 아닌듯하여 해석하며 읽으면 그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옛날의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을 가진 시다. 박인환 시인이 작고하기 3일 전에 ‘물고 작가 추모회’에서 낭독하기 위해 쓴 시라는데 시의 따끈함이 가시기도 전에 시 속 대상의 한 명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멋진 시를 낭독하지도 못한 채 작고한 그의 인생은 너무 짧았다. <옛날의 사람들에게>라는 시는 당시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옛 문화인들이 옛날의 사람이 된 후에 예술의 금자탑이 되어 정신이 살아 숨쉬는 것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연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 불행하였고 / 당신들은 살아있었을 때 / 즐거운 말이 없었고 /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 사랑해 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들도 마음을 울린다. ‘내 마음이 서운할 때에 나는 당신들이 만든 문화의 화단 속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던가, ‘승리가 온 것인지 패배가 온 것인지 그것은 오직 미래만이 알며...’, 같은 부분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연 역시 문학가들과 그들의 작품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끝을 맺는다.

허나 지금 / 당신들은 불행하지 않으며 / 우리의 말은 빛나며 / 오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 당신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의 내용에 깊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박인환 시는 읽는데 오래 걸리는 것도 있지만 이처럼 이해하기 쉽게 와닿는 시도 있다. 위에 소개한 그의 시처럼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박인환 시인을 사랑하며 그의 자취를 따라가고, 그의 빛나는 말들이 담긴 시집을 즐기고 있다. <검은 준열의 시대>를 읽으며 그 동안 잊고 지낸 시적 감수성이 살아난 듯했다. 박인환을 오로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우므로 그에 대한 재평가가 절실하다는 책의 출판 요지에 크게 동감한다. 이 책으로 하여금 박인환의 폭넓은 시적 감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