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는 미국의 사회철학자이며, 불우한 환경속에서 자라

일생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어 10 여권의 중요한 저작을 남겼다.

나는 몇년 전 에릭 호퍼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그의 저력에 많이 감명 받은 바 있다.

 

이 책 <맹신자들>은 그의 첫 저작으로 대중운동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다.

역사 속에서 나타난 많은 혁명들, 파시즘, 나치즘 과 같은 대중운동의 속성에는 무슨

공통점이 있으며,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이런 대중운동에 휩쓸리는 지를 상세하게 고찰한다.

 

저자는 망가지고 하찮게 되어 자기 인생에 스스로를 바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자기 아닌 다른 것, 즉 숭고한 대의에 스스로를 바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 부적응자, 빈민, 소수자, 죄인 등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호퍼는 이 책에서 대중운동에 빠져드는 이 맹신자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해 놓았다.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가담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자면

열렬한 나치 젊은이의 말마따나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다."

 

"개인의 의지와 판단, 야망을 버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하나의 영원한 이상을 위해

바침으로써 그들은 끝내 채워지지 않을 저 끝없는 수레바퀴로부터 마침내 헤어나는 것이다"

 

읽다보면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개성과 주체성이 없으며 자기부정으로 가득찬 인간들로

비쳐진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을 폄하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바로 이들이야말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이들이 일으킨 대중운동은 정체된 사회를

각성시키고 혁신시키도 하며 때로는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단, 호퍼는 책 말미에 좋은 대중운동과 나쁜 대중운동을 구별해 놓았다.

목표가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대중운동이 일정한 목표가 없거나 모호하고 막연한 목표를 가진 대중운동보다

좋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자국의 압제에 대한 해방운동이나 외세의 침략에 맞선 저항운동,

그리고 후진국의 사회개혁 운동은 목표가 분명하고 투쟁이 끝나면 운동이 종료된다. 이는 좋은 대중운동이다.

하지만 지상낙원을 꿈꾼 공산주의나 예수가 이끈 하느님 나라 운동 같은 유토피아 주의는 결코 운동이

종료되지 않으며 좋은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 현대의 대중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다.

좋은 대중운동은 저자의 말마따나 목표가 분명하고 실현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선이 창출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막연히 전쟁을 폐지하자는 것보다는 핵을 폐기하자는

운동이 좀더 목표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다.

현대사회는 미디어가 발달된 사회이므로 개인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더욱 효과적인 운동을 이끌어갈 수 도 있을것이다. 

 

이 책은 50년이나 지난 책이지만 대중운동 전반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고 더 효과적이고

좋은 대중운동의 고찰로도 이어질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읽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