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만화가 그 어떤 위대한 문학작품 보다 깊은 이야기를 전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그런 만화들을 명작이라 말한다. 청소년은 물론 지금의 어른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친 [슬램덩크] 시리즈를 비롯해서 작년 '응칠앓이'를 일으킨 드라마의 주제음악이었던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노래의 배경이 되는 [H2] 시리즈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만화를 읽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숨겨진 명작이라는 추천을 받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총 43권의 방대한 분량,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활약을 하는 가운데 인간의 근원에 대한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멋진 만화이다. 과연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작이라는 칭호가 과하지 않은 만화이다.

 

  기본적으로 이 만화의 그림체는 나와 맞지 않는다. 추천한 이의 말이 없었다면 첫 페이지를 보고 바로 덮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너무 강한 외곽선과 복잡한 배경처리, 거친 손놀림의 그림체는 집중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체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의 전통인 꼭두각시 인형에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한 로봇과 같은 꼭두각시 인형들을 탄생시키고 그 인형들이 인간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서 인간과 기계인형간의 생존을 건 거대한 전쟁을 그려낸다. 다소 황당하고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질문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인간을 인간이게 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인형들이 찾아다니는 웃게 만드는 방법에 숨어있는가? 웃을 수 있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신체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고 인간의 정신만 옮겨 올 수 있는 기술이 있어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영원한 삶을 얻을 것인가?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면 행복한가? 인간은 과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의 의지에 의해 강제로 조정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가? 인간은 왜 무리지어 사는가? 무리지어 사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가? 인간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등. 기계인형과 인간의 참혹한 전쟁속에서 작가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을 기계와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동체의 삶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고 그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의 또하나의 주제는 '사랑'이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천제 연금술사 형제의 비극적인 사랑, 바이인과 프란시느의 애절하고 가슴아픈 사랑, 쇼지와 안젤리나의 행복했던 사랑과 가슴아픈 이별, 프란시느와 안젤리나를 향한 바이진의 무서운 집착과 애정, 마사루와 시로가네의 아슬아슬한 감정의 흐름, 시로가네와 가토의 깊은 사랑 등 등장인물들 간의 수많은 애증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그림체 속에서도 작가는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인위적으로 감정의 흐름을 이끌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가장 큰 특징은 '사랑'이라는 것을. 남녀간의 이성적인 사랑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가족간의 사랑, 공동체 속에서의 사랑 등 인간 세상을 굴리는 가장 큰 힘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다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그림속에 묻혀버린 진실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순간, 이 만화는 나에게 명작으로 남아 버렸다.

 

  총 43권, 권당 2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 읽어내기 쉽지 않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생각도 많이 하게된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가 워낙에 재미있기 때문에 다음 이야기를 계속 찾게 되는 마력을 가진 만화이다. 지금은 전편이 나오지 않고 일부는 절판이 되어버려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지만 만화방에서든, 중고로든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명작이다. [슬램덩크] 이후에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만화는 처음이다. 강추 !!!

후지타카즈히로, 꼭두각시서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