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의 성공은 수많은 팩션들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팩션'이라는 장르가 하나의 흐름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팩션들이 출간되었고 그 중에 대박을 터뜰리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역사 팩션들이 유명한 인물들의 실제 사건들과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허구와의 조합이었다면
[달과 그림자]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순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림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나 '첩보 조직'은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전쟁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캐내기 위한 소리없는 또 하나의 전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임진왜란을 기록한 어느 역사서에서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행동 자체가 드러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지만
엄연히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잊혀져 버린 그들의 이야기가 [달과 그림자]이다.

임진왜란이 서서히 종결되고 강화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군의 최대의 적으로 지목된 인물이 '이순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 히데요시가 보낸 최고의 첩자는 바로 '닌자'.
우연한 기회에 첩자의 침입을 알게된 비밀 낭청 '정호준'은 그를 막으려 한다.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조선과 일본을 넘나들며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치열한 첩보전.
비밀 낭청 '정호준'과 최고의 닌자 '시게루'의 대결은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걸고 진행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 기록에 남아있지 않는 비밀요원들의 치열한 첩보전이다.
'007 시리즈'를 통해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첩보 스릴러가 임진왜란이라는 무대를 만났다.
대부분의 첩보물들과 비슷하게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 목표를 향해가는 요원들의 활동과
서로에게 운명처럼 다가 온 '호적수'에 대한 기대(?)와 그 적수를 이기고자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누가 누구인지,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퍼즐 조각들 처럼 하나 하나 맞아들어가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마치 여기저기 뿌려놓은 단서들을 조합해서 범인을 밝혀내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닮아있다.
그래서 첩보물인 동시에 스릴러이며 추리소설 같은 이 소설은 지금까지의 역사팩션들과 확실이 차별된다.

'닌자'라는 조직은 헐리웃 영화에서 지겹게 나오고 우리에게 익숙한 조직이지만
그 실체는 일본에서 조차도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조선의 비밀 낭청도 '낭청'이라는 직위는 역사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들의 첩보활동을 했는가에 대한 것은 밝혀진 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조직들과의 싸움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멋지게 그려진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조직이었으면서도 
스스로 기꺼이 역사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갔던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시게루'와 '정호준'의 대결.
역사를 무대로 펼치는 초인적 능력을 지닌 개인들의 대결이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시게루라고 믿었던 인물이 정호준이 되어 있고 정호준이라 믿었던 인물이 시게루가 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를 이기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행동하는 모습들.
일순간 누가 이겼다고 생각되었으나 다음 순간 승자가 바뀌는 치열한 두뇌싸움.
팽팽한 긴장의 끈이 마지막에 가서 풀리면서 승부가 갈라지는가 싶지만 또 다시 이어지는 반전.
결국 책의 마지막 장에 가서야 결말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긴장감.

역사 팩션의 새로운 시도가 멋지게 성공했다는 느낌이다.
역사 팩션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첩보 영화의 긴장감과 추리소설의 두뇌싸움까지 즐길 수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같은 시기에 이 소설 강력히 추천할만 한 소설이다. 강추 !!!

박은우, 달과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