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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 소설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운명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는 소설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숨겨진 내면을 파헤친 소설들을 좋아합니다.
저는 소설의 가치를 재미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을 즐겨 읽다보면 너무나 심각한 문체, 너무나 깊은 생각들 때문에 지루한 소설들도 많습니다.
소설을 창작하는 사람들도 가볍고 웃기는 이야기들은 천박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제가 읽은 소설들 중에서 이야기의 힘이 강한 소설들, 재미가 넘쳐나는 소설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머리가 복잡해 지거나 너무나 심각한 상황들에 둘러싸여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때 읽어보세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1. 남쪽으로 튀어 !!!
일본 작가 중에서 가장 웃긴 작가 중에 한 명이 바로 오쿠타히데오 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공중그네'에 나오는 이라부를 주인공으로 한 '면장선거', '인더풀' 등의 작품들을 통해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 바로 이 소설입니다.
어설픈(?), 혹은 철저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를 둔 가정의 12살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내가 원해서 일본 국민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국민이기를 거부한다'은 아버지.
사사건건 세상과 부딪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
시종일관 엉뚱한 아버지와 세상의 투쟁을 통해 웃음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한 아이의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으며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는 웃기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입니다.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소설을 추천할 때 0순위로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2. 말이 되냐?
저는 개인적으로 야구광입니다. 그것도 극성스럽기로는 세계 최고인 골수 롯데팬이죠.
그런 저에게 이 소설을 아주 특별합니다. 야구를 주제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죠.
작가의 프로필에 자기 소개 대신에 사회인 야구 성적을 써 놓을 정도로 야구광인 작가가
남자들이 어렸을 때 한번쯤 빠져 읽었을 무협지의 도술들과 프로야구를 접목해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독특한 무협 야구 판타지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현실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 야구 만화 같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야구에 목숨을 건 세 남녀의 무모한 도전기를 통해 시대에 좌절한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는 소설입니다.
세상 모두가 비웃어도 꿈을 버리지 말라고.. 열정과 꿈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하라고 격려하는 소설이죠.
야구를 몰라도 전혀 문제 없습니다. 어려운 야구용어들은 중간 중간에 만화로 친절히(?) 설명을 하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저 역시 소설의 주인공처럼 되는 꿈을 꾸게 만들었죠. 대리만족이죠. ^^

3. 유정천 가족
모리미 도미히코는 '교토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에 해당할 정도로 일본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있는 쿄토를 기반으로
일본의 전통설화를 현대에 되살려 전설과 현실을 아우르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입니다.
이 소설은 너구리 가족이 주인공입니다. 너구리는 일본 설화에서 사람으로 둔갑하는 동물로 나옵니다.
훌륭한 너구리의 리더였던 아버지가 냄비요리가 되어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진 3형제의 이야기 입니다.
아버지에 비해 턱없이 떨어지는 못난 3형제와 그 3형제를 언제나 최고라고 북돋워주는 엄마.
결국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여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내는 너구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못난 사람도 장점은 있으며 그 장점들이 모이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폼포포 너구리 대작전'을 보신 분들이라면 더욱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밤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차와 전설속의 요괴인 텐구들이 등장하는 재미있고 독특한 판타지 소설입니다.

4. 신문물 검역소
인터넷에서 '강지영'을 검색하면 그룹 '카라'의 막내 강지영이 나옵니다. 작가 강지영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 강지영은 그 인지도에 비해 강력한 내공을 갖춘 겁없는 신인작가 입니다.
이미 '파라다이스'라는 단편집을 통해 핏빛으로 물든 무서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장르문학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 소설을 '파라다이스'의 작가가 썼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소설입니다.
조선 후기 신문물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더 시기에 서양의 신문물들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대응과
그 틈바구니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해결을 주제로 만들어 낸 팩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망원경, 브래지어 등의 신문물들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웃지못한 에피소드들과
팩션 역사상 최고의 찌질이(?) 주인공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이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냅니다.
거기에 찌질한 주인공과 완벽한 여주인공의 말도 안되는 연애담까지... 정말 재미있습니다.
신문물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우리가 사회를 보는 시각에 담길 수 있는 편견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5. 지구영웅전설
박민규라는 작가는 이제 한국문학에서 나름의 위치를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초기작인 이 소설은 어릴 때 우리들의 영웅이었던 '슈퍼특공대'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하는
'바나나맨'의 독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지금도 미국이라면 사죽을 못쓰고 열광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버림받은 가출 소년이 슈퍼특공대에 의해 구출되고 그들의 임무를 비밀스럽게 돕고
스스로 슈퍼특공대 멤버가 되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는 황당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주제, 작가가 비판하는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진 우리의 모습들은 결코 우습지 않습니다.
재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숨기지 않은 멋진 소설입니다.
저를 박민규라는 작가의 팬으로 만든 소설이기도 합니다.

6.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현재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는 소설입니다.
아픈 남동생을 대신하여 과거를 쳤다가 덜커덕 합격해서 성균관에 들어가게 된 윤희라는 여주인공이
말도 안되게 '대물'이라는 별명을 얻고 그곳에서 '가랑', '여림', '걸오'라는 3명의 남자들에 둘러싸여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그린 조선판 '캠퍼스 스토리'라고 할 수 있죠.
남장여자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에피소드들,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도 지켜주고자 하는 3명의 남자들.
조선판 'F4'라고 할 수 있는 '잘금 4인방'을 둘러싼 이야기와 그 시대의 당파싸움과 연결된 사건들.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그 인기에 의해 속편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입니다.
이제 결혼을 한 '가랑'과 '대물'에게 정조가 규장각으로 들어오라는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내리고
그로 인해 엉겹결에 규장각에서 벌이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속편 또한 정말 재미있습니다.
원작의 인기가 워낙 커서 드라마로 만들기에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인터넷을 뒤져보면 수많은 가상캐스팅이 존재한다는 것만 봐도 이 소설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가 많은 부분 각색을 할 예정이라고 하니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에 먼저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소설의 재미는 100% 보장합니다. 팬들이 3편을 내놓으라고 작가에게 요구할 지경이니까요. ^^

7. 6인의 용의자
작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휩쓴 '슬램독 밀리어네어'를 기억하십니까?
이 소설은 '슬램독...'의 작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또 다른 소설입니다.
'슬램독...'이 인도의 빈민가의 삶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정직한 삶의 가치를 그려내고 있다면
이 소설은 인도의 고위층 자제의 살인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을 통해 인도의 또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불과 몇 십년전 우리의 모습과 닮은, 비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인도의 상류층의 모습에 대한 비판과
소수민족, 부패한 관료, 철없는 관광객 등의 등장인물이 펼치는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은 쓴 웃음 짓게 만듭니다.
'슬램독...' 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언젠가는 영화화가 되기를 바라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낮선 대륙 인도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엿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모두들 재미 하나는 보장하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정리하고 보니 모두들 재미만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나름의 주제를 가진 소설입니다.
웃음을 만들기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속에 의미를 담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이 소설들은 2가지 모두를 건진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